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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효 2

박영효국왕폐위음모사건,1898년,박영효,고종

1898년과 1900년 박영효가 고종을 폐위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려 꾀한 정변. 갑오개혁 시기 내무대신으로 개혁을 이끌던 박영효(朴泳孝)는 궁중 호위병 교체 시도를 둘러싼 역모 혐의로 실각하고 1895년 7월 조선을 떠났다. 박영효는 1896년 5월 이후 일본에 체류하면서 일본에 있던 조선인 망명자들을 규합하고, 이들과 조선내 동조자들의 협력을 얻어 고종을 폐위하고 새로운 왕을 옹립하려는 정변을 계획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했다. 역사적 배경 1896년 2월 아관파천 시기부터 1897년 대한제국 성립 후 몇 년간 군주권을 위협한 정치세력은 독립협회와 일본에 있던 조선인 망명자들이었다. 독립협회를 구성하던 여러 정치세력은 일본의 망명자들을 끌어들여 권력을 장악하려고 했고,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고종은 ..

갑신정변,1884년,개화당,완전 자주독립,근대화, 김옥균,박영효

1884년(고종 21) 개화당(開化黨)이 청국의 속방화정책에 저항하여 조선의 완전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여 일으킨 정변. 김옥균(金玉均)을 중심으로 하여 1874년경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개화당은 개항 후 세력을 증대시키면서 자주 부강한 근대국가 건설을 위해 여러 가지 자주 근대화 개혁을 추진해 왔으나, 1882년 7월 임오군란으로 인해 커다란 장애에 부딪치게 되었다. 임오군란이 일어나 민씨 외척 정권이 붕괴되고 흥선대원군이 집권하자 민씨 수구파는 청국에 구원을 요청하였으며, 청국은 한림원학사 장패륜(張佩綸)의 ‘동정선후육책(東征善後六策)’이라는 건의안을 채택하여 이 기회에 군대를 파견하여 임오군란을 ‘진압’한 다음 조선을 실질적으로 ‘속방화(屬邦化)’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청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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