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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2

곰탕 유래, 몽골, 공탕(空湯), 곰탕 설렁탕 차이

● 공탕(空湯) 몽골음식이었던 고기를 넣고 삶은 맑은 국물을 ‘공탕(空湯)’이라고 하는데, 공탕을 ‘슈루’라고 발음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로 전해지면서 공탕(空湯)이 곰탕, 슈루가 설렁탕으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조 때 간행된 몽골어 사전인 몽어유해(蒙語類解)에는 ‘공탕은 전쟁터에서 (고기를 조금 넣고도 많은 양을 만들 수 있어서) 군사들의 식사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곰탕이 ‘푹 고아서’ 곰탕이 아니라 고깃덩이는 안 보이는 맑은 국물인 공탕(空湯)이었던 것이다. 설렁탕도 조선시대 선농단(先農壇)에서 제사를 지내면서 소고기를 국에 넣어 끓여서 나눠먹었다고 해서 선농탕(先農湯)이란 설이 있다. 눈처럼 진한 국물이라고 해서 설농탕(雪濃湯)이 설렁탕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

원간섭기(元干涉期), 몽골, 부원세력, 입성책동, 권문세족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전반까지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을 받았던 시기 고려는 1231년(고종 18)부터 몽골의 침략을 받아 약 30년 동안 항전을 벌인 뒤 1259년(고종 46)에 강화(講和)를 맺었고, 그로부터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운동(反元運動)이 성공할 때까지 원의 간섭을 받았다. 원간섭기(元干涉期)는 고려의 대몽항쟁(對蒙抗爭)이 끝나고 원의 간섭을 받기 시작했을 때부터 반원운동에 성공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을 때까지이므로 일반적으로는 1259년부터 1356년까지 97년간의 시기를 가리킨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1270년(원종 11) 무신정권이 붕괴되고 개경환도(開京還都)가 이루어질 때까지 고려의 대몽항쟁이 계속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1273년(원종 14) 제주도에서 삼별초(三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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