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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5

명종, 문정왕후, 보우, 임꺽정

Q 다음 사건이 일어난 왕의 재위 기간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임꺽정은 양주 백정으로, 성품이 교활하고 날래고 용맹스러웠다 그 무리 수십 명이 함께 다 날래고 빨랐는데, 도적이 되어 민가를 불사르고 소와 말을 빼앗고, 만약 항거하면 몹시 잔혹하게 사람을 죽였다, 경기도와 황해도의 아전과 백성들이 임쩍정 무리와 은밀히 결탁하여, 관에서 잡으려 하면 번번이 먼저 알려주었다. ① 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형성되었다. ②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며 불교를 옹호하였다. ③ 삼포에서 4∼5천 명의 일본인이 난을 일으켰다. ④ 조광조가 내수사 장리의 폐지, 소격서 폐지 등을 주장하였다. 【해설】 정답 ② 임꺽정은 백정 출신으로 조선 명종 때 황해도 구월산에서 활동하였다. ① 조선 선조 때 붕당이 형성되었다. ② 인종이..

정미약조, 1547년, 명종, 일본 국교 허용

1547년(명종 2) 조선이 3년 전의 사량진왜변(蛇梁鎭倭變) 이후 중단되었던 일본과의 국교를 다시 허용한 조약. 조선은 삼포왜란 이후 1512년 일본과 임신약조를 체결하고 왜인의 행동을 제약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일본은 호족들이 할거하는 전국시대의 내란기로 국내가 혼란해지자 왜구들이 다시 일어나 왜인과의 충돌은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1544년 왜선 20여 척이 경상도 사량진(경남 통영시 원량면 진동)에 쳐들어와 인마(人馬)를 약탈하였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임신약조를 파기하고 왜인 내왕을 금하였다. 일본은 대마도주를 통해 국교 재개를 간절히 요청했으며 조정에서는 통교 문제를 놓고 찬반 양론으로 맞섰다. 문제는 왜인들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었다. 결국 국왕사(國王使)의 통교만을 허용하고 대..

을사사화,1545년,명종,대윤,소윤,윤원형,윤임,문정왕후

545년(명종 즉위년) 왕실의 외척인 대윤과 소윤의 반목으로 일어나, 대윤이 소윤으로부터 받은 정치적인 탄압. 기묘사화 이후 사림이 후퇴한 사이에 신묘삼간(辛卯三奸 : 중종 20년 신묘년에 사형된 沈貞·李沆·金克愊을 말함.)과 김안로(金安老)와의 싸움과 같은 권신간의 치열한 정권다툼이 일어났다. 김안로는 심정 등의 탄핵으로 귀양중 정신(廷臣)과 내통해, 심정 등이 유배중인 경빈 박씨(敬嬪朴氏)를 왕비로 책립할 음모를 꾸몄다고 탄핵하였다. 이로써 반대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김안로 일파는 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과 결탁해 권세를 누리면서,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몰아내겠다고 위협해 조정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文定王后)주 01)를 폐출하려고 음모를 꾸..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정미사화,을사사화,1547년,명종,윤원형, 윤임

양재역벽서사건은 정미사화(丁未士禍)라고도 한다. 1547년(명종 2) 9월 경기도 과천 양재역(良才驛)에 문정왕후가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권세를 농락하고 있다는 내용의 벽서가 발견되었다. 이기 등은 이러한 벽서를 붙인 것은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잔당이 행한 짓이라며 그들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결국 대윤(大尹)의 잔당으로 지목된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송인수(宋麟壽), 이약수(李若水) 등이 사형당하고, 권발(權撥), 이언적(李彥迪), 정자(鄭磁), 노수신(盧守愼), 유희춘(柳希春), 백인걸(白仁傑) 등 20여 명이 유배당하였다. 윤씨 집안의 피 터지는 싸움 중종은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를 폐출한 뒤 반정을 주도했던 윤임(尹任)의 여동생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와 결혼하였다. 그..

김사미의 난(金沙彌─亂),1193년,명종,무신정권기민란,신라부흥운동

1193년(명종 23) 경상북도 청도 운문에서 김사미가 일으킨 반란. 12세기에 접어들면서 고려의 귀족지배체제는 점차 동요하기 시작해, 1170년(의종 24) 무신정권이 수립되자 문신을 중심으로 하는 귀족정치는 일단 종식되었다. 무신정권은 약 1백년간(1170∼1270) 존속하지만 무신 집권 초기의 정국은 매우 혼란하고 불안정해, 과중한 수탈과 고된 생활에 지친 농민과 천민들은 이 틈을 타서 전국적으로 큰 민란을 일으켰다. 민란은 무신정권의 전기간에 걸쳐 간헐적으로 발생했으나, 그 규모나 양상이 가장 크고 격렬한 것은 무신정권 초기의 약 30여 년간에 걸쳐 일어난 삼남(三南) 각지의 민란이었다. 김사미의 난은 이 시기에 삼남지역에서 발생한 수많은 민란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이고 특징적인 민란의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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