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사르의 암살 이제 명실상부하게 로마의 1인 지배자가 된 카이사르에게 종신 독재관을 비롯한 각종 특권과 특전이 부여되었다. 카이사르는 각종 사회정책(식민·간척·항만·도로건설·구제사업 등)을 추진하고 달력을 율리우스력으로 개정하는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BC 53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인에게 당했던 참패를 당했던 카르하이 전투를 설욕하고자 대규모 원정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것이 카이사르 반대파를 자극했다. 카이사르에게 이미 많은 권력이 집중되어 많은 사람들이 왕위를 탐내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었는데 카이사르가 또다시 엄청난 군사적 명성을 얻게 된다면 카이사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결국 원로원의 공화정 옹호파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롱기누스를 앞세워 BC 44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