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혁명행동 부주필, 북경시위원회 조직부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 본명 장지락(張志樂), 별명은 장명(張明)·이철암(李鐵岩)·한비종·유종화. 평안북도 용천 출신. 장로교 계통의 학교에 다니던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는 등 강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입학을 준비할 때 일본 노동자와 재일조선인의 열악한 처지를 목격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무정부주의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1920년경 만주로 건너가 6개월간 신흥무관학교에서 군사학을 배우고 상해(上海)로 간 뒤,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교정원 및 인쇄공으로 일하였다. 이때부터 많은 독립운동가를 만나고 손문(孫文)의 글도 접하게 되면서 공산주의를 믿기 시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