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왕(假王)을 몰아내고 진왕(眞王)을 세운다는 말로,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등이 창왕(昌王)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한 사건. 창왕과 그 아버지 우왕(禑王)이 왕족이 아니라는 의심은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恭愍王)이 최만생(崔萬生)·홍륜(洪倫) 등에 의해 시해된 뒤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다. 이는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辛旽)과 그의 비첩(婢妾) 반야(般若)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 당시 태후와 시중 경복흥(慶復興) 등은 종친으로써 왕위를 잇게 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인임(李仁任) 등이 이미 대군에 봉해져 있던 우왕의 옹립을 고집해 결국 우왕이 즉위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직후에 이성계측의 윤소종(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