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고려 말 2

폐가입진, 廢假立眞, 가왕(假王)을 몰아내고 진왕(眞王)을 세운다, 고려 말, 이성계, 창왕, 공양왕, 역성혁명

가왕(假王)을 몰아내고 진왕(眞王)을 세운다는 말로,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등이 창왕(昌王)을 폐위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옹립한 사건. 창왕과 그 아버지 우왕(禑王)이 왕족이 아니라는 의심은 1374년(공민왕 23) 공민왕(恭愍王)이 최만생(崔萬生)·홍륜(洪倫) 등에 의해 시해된 뒤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제기되었다. 이는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辛旽)과 그의 비첩(婢妾) 반야(般若)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역사적 배경 당시 태후와 시중 경복흥(慶復興) 등은 종친으로써 왕위를 잇게 할 것을 주장했으나, 이인임(李仁任) 등이 이미 대군에 봉해져 있던 우왕의 옹립을 고집해 결국 우왕이 즉위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1388년(우왕 14)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직후에 이성계측의 윤소종(尹..

대마도정벌(對馬島征伐),고려 말, 조선 초,왜구 근절

고려 말 조선 초에 왜구를 근절시키기 위해 대마도를 정벌한 일.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해적집단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여말선초 약 70년간 우리 나라 연안 각지에 침입하였다. 특히 고려 말의 약 40년간은 왜구가 창궐해 피해가 극심하였다. 이에 고려는 사절 파견, 성보(城堡) 수축, 수군 증강, 화기 개발 등의 왜구의 근절책을 세웠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려 말의 장군출신이었던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왜구의 피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위 초부터 왜구대책에 부심해 이를 방어하는 한편, 흥리왜인(興利倭人)주 01)과 귀화왜인을 우대하는 등 유화정책을 썼다. 그러나 침입이 계속되자 그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정벌하게 되었다. 대마도는 본래 신라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