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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첨 2

강감찬(姜邯贊), 거란, 강조의 정변, 소배압, 강민첨, 구주대첩

고려전기 서북면행영도통사, 상원수대장군,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금주(衿州). 초명은 강은천(姜殷川). 경주에서 금주로 이주해 호족으로 성장한 강여청(姜餘淸)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강궁진(姜弓珍)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983년(성종 3) 과거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뒤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거란의 성종(聖宗)이 강조(康兆)의 정변을 표면상의 구실로 내세워 서경(西京)을 침공하자 일시 후퇴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에 현종(顯宗)을 나주(羅州)로 피난시켜 사직을 보호케 하였다. 이듬해국자좨주(國子祭酒)가 되고, 한림학사(翰林學士)·승지(承旨)·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중추원사(中樞院使)·이부상서(吏部尙書) 등을 지냈다. 1018년(현종 9)..

구주대첩(龜州大捷),1019년,현종,거란3차침입,고려거란전투,강감찬,강민첨

1019년(현종 10) 고려에 침입한 거란군을 구주에서 크게 격파한 전투. 앞서 1010년(헌종 1) 흥화진(興化鎭)의 수장 양규(楊規)가 거란 성종(聖宗)이 거느린 40만 대군을 구주 남쪽의 산악지대에서 대파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구주대첩이라 하면 1018년 12월소배압(蕭排押)을 총지휘관으로 한 거란의 제3차 침입 때, 10만의 거란대군을 상원수 강감찬(姜邯贊) 등이 구주에서 크게 무찔러 거란군의 전의를 완전히 잃게 한 전쟁을 말한다. 경과 구주는 993년(성종 12) 10월 거란의 제1차 침입 후 체결된 강화조약에서 서희(徐熙)의 외교적인 수완으로 고려의 점유를 인정받은 청천강 이북에서 압록강 입구까지의 강동지방에 설치된 행정구역인 강동육주의 하나이다. 그 뒤 1010년 11월 거란의 제2차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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