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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강랭(浿江冷), 이태준 [현대소설]

Jobs 9 2023. 1. 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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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강랭(浿江冷)(1938)

이태준

 

줄거리
부벽루 다락은 고요하기만 하고, 대동강 물은 차갑기만 하다. 현(玄)은 조선 자연은 왜 이다지 슬퍼 보일까 하고 생각한다. 현은 평양이 십여 년만이다. 새로 쓸 소설의 스케치를 위해 오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벼르기만 했다.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보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었건만 선뜻 마음이 나지 않았던 차에, 이번엔 박(朴)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박은 편지에서 강사 자리도 얼마 안 가서 떨어질 것이라는 말을 했다. 현은 자기가 가서 위로해 주어야만 할 것 같아 이렇게 평양으로 내려왔다. 
정거장에 나온 박은 수염도 깎지 않았고, 찌싯찌싯 비웃는 웃음을 보인다. 현은 박에게서 선뜻 자기를 느끼고 괴로워진다. 나중에 대동강 가의 동일관이란 요정에서 만나기로 하고, 현은 혼자 모란봉으로 와 걷는 것이다. 오는 길에 자동차에서 본 평양 거리는 달라진 것이 많았다. 빌딩도 늘었고, 무엇보다도 여자들의 머릿수건이 보이지 않았다. 평양 여인들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제 고장에 와서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평양은 또 한 가지 의미에서 폐허라는 서글픔을 주는 곳이었다. 
동일관까지 배를 타고 흘러 내려간다. 강물에 내어민 바위 위에 지은 집이다. 거기에 박과 부회 위원인 김이 와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얘기를 나누는 중 기생들이 말참견을 한다. 12년 전 유명한 기생이었던 영월이를 화제에 올린다. 문학 청년이던 현을 사모하던 영월이었다. 박은 보이더러 영월이를 불러 달라고 한다. 김이 현더러 이제 방향 전환을 하라고 타이르는 중에 영월이 들어온다. 영월의 얼굴에 세월의 자국이 묻어 있었다. 현은 세상살이의 고단함에 대해 말한다. 영월은 잔잔하게 현의 말에 대답한다. 
현이 머릿수건을 쓰지 않은 것에 대해 화제를 꺼낸다. 김은 수건값과 댕기값이 일 년에 얼마나 드는 줄 아느냐고 그걸 없앤 걸 자랑스러워 한다. 현은 생활 개선이란 명목으로 여자들의 그까짓 멋마저 앗아 가는 처사에 분개한다. 문화를 모른다고 현은 김을 욕하고, 김은 현더러 세상 물정에 어둡다며 언쟁을 한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걸 수습하려고 영월은 장고를 가져다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박은 따라 부르다 괜히 눈물을 흘린다. 김은 보이를 불러 유성기를 가져오라 한 뒤, 기생들과 어우러져 댄스를 춘다. 현은 그 틈에 영월과 못 다 한 얘기를 나눈다. 그 동안 그리웠다고 하자 영월은 고맙다고 인사한다.
김이 댄스를 추고 난 뒤, 현은 댄스를 추는 것에 혐오감을 표한다. 풍류가 있는 기생 문화를 버리고 서양 댄스를 즐기는 부류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었다. 영월은 돈을 벌기 위해 못 하는 댄스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기생도 돈이 있어야 하겠더라고 말한다. 남자를 만나 따라갔다가 그가 싫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 기생의 신세고 보니, 돈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은 이 말을 듣고는, 자네들도 이제 실속을 차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다가 현이 김의 얼굴에 컵을 던지는 바람에 술판이 깨지고 만다. 현은 박에게 떠밀려 밖으로 나온다.  
강가를 걷다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란 말이 떠오른다.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얼음이 올 것을 각오하라는 뜻이다. 현은 술이 확 깬다. '이상견빙지'라고 되풀이하여 중얼거린다. 밤 강물은 시체와 같이 차고 고요하다. 

 

인물의 성격
- 현 → 옛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애착을 가지는 소설가로, 현실에 대해 회의적인 소극적 지식인으로 작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
- 박 → 조선어 교사로 친일이 득세하는 세상 분위기에 쓸쓸함을 느끼는 인물
- 김 → 부회의원을 지내며, 친일파로 당시에 출세한 인물이며 물질적이며 속물적임.

 

이해와 감상
- 이태준의 소설은 소외된 자의 설움을 잔잔하게 그린다는 데 있다. 그의 소설은 잔잔한 페이소스(애상감)가 드리워지면서 생활의 애환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패강랭>에서는 '현'이라는 주인공이 오랜만에 평양을 찾아와, 거기서 삶의 비애를 느낀다는 줄거리를 통해 역시 그러한 일면이 드러나고 있다. 소설 첫머리에서 주인공 '현'이 평양 대동강 부근을 묘사하는 대목은 주제의 방향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세밀하게 묘사된 풍광에서 '유구한 맛'을 느끼게 하지만, 지금은 그저 오래 된 느낌만 남고 쓸쓸해 보이기만 한다. 그리고 그 서글픈 풍경 저편에는 상실의 아픔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현의 정체성은 분명히 과거의 삶에서 형성되었고, 또 뿌리를 과거에 둔 것이 확실하면서도, 과거의 삶이 현재는 너무나 미력하다는 인식에 비애감을 느끼는 것이다. 머릿수건이 사라지고 기생이 퇴조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현의 내면은 옛 것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젖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옛 것의 격조를 퇴색케 하는 시대적 흐름에 그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 시대적 흐름에 소외된 자의 페이소스 → 시대의 흐름은 '격조를 생각하지 않고 돈으로 가치를 재는 시대로' '정신주의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태로' 변화하고 있다. 주인공 현이 지니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은 이제 자신만에 해당하는 것이지 남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되고 말았다. "이자식? 되나 안되나 우린 이래뵈두 예술가다! 예술가 이상이다. 이 자식…."하고 내뱉는 그의 말은 분명 시대적 흐름에서 소외된 자의 아픔인 것이다.  대동강의 풍경, 평양 거리의 모습, 정거장에 마중 온 박의 모습 등은 모두가 하나같이 쇠퇴해 가고 있는 모습이며, 이러한 모습은 주인공 현의 내면이 투영된 대상이기도 하다. 
이러한 세태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대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슬픈 것이다. 시대의 흐름에 잘 편승하고 있는 자가 바로 '김'이다. 그는 부회의원으로서 경세가이다. '현'은 그런 그를 속물이라고 울분을 터뜨리지만 '현'이 분개한 것은 '김'이 아니라 '김'으로 대표되는 세태라고 할 수 있겠다. 
- 10여년 만에 평양에 찾아온 소설가 '현'은 피폐화된 평양의 거리에서 훼절한 친구인 부회의원 '김'과 마주하게 된다. 현은 김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민족 고유 문화의 말살과 전시체제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를 절감하게 된다. 그리고 조선어 교사인 '박'의 실직과 평양 여인의 머릿수건이 정책적으로 폐지되는 것을 통해 일제 강점기의 모순을 한층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 '김'과 다투고 강변을 거닐면서 '현'은 <주역>에 나오는 "이상견빙지"란 글귀를 문득 떠올리는데, 서리를 밟거든 그 뒤에 올 얼음을 각오하라는 말이다. 지금이 서리라면 앞으로는 서리보다 더한 얼음의 참담함이 온다는 것이다. 그 말을 생각하는 현의 가슴은 더 짙은 비애감에 잠기며, 대동강 물이 언 것 처럼 세상은 얼어가고 있는 것이다.
- 주인공의 현실을 바라보는 태도

㈀ 변해가는 세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면서 식민지 말기의 갑갑한 현실과 문화가치를 지키고자 함. 

㈁ 사라져가는 우리 것에 대한 향수와 연민을 지님. ㈂ 근대화의 과정을 회의적 입장에서 바라봄.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1930년대, 평양 대동강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현실 비판적, 서정적, 의고적 분위기
- 주제
*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비애
* 예술가 정신의 고고함이 지켜지지 않는 세태에의 절망
* 일제에 의해 말살되어 가는 전통에 대한 애정과 민족의식
- 갈등 :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현과 김의 갈등)
⇒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는 것은 예술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김'은 '현'에게 이제 '방향 전환'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 방향 전환이란 일본어로 소설을 쓰거나, 조선어로 쓰더라도 팔릴 만한 글을 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말을 듣자 '현'의 감정은 마침내 폭발해 버린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우린 이래봬두 예술가다! 예술가 이상이다!"라는 말이다. '현'이 '김'에게 '우리는 예술가다'라고 외치는 것은 말 그대로 속물들의 세계에 맞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제목인 '패강랭(浿江冷)'⇒ '패강랭'은 '패강이 얼었다'는 뜻으로, 배경을 통해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감정이입한 것이다. '패강'은 대동강의 별칭이다. 또한 이 작품의 마지막 단락의 '밤 강물은 시체와 같이 차고 고요하다.'의 한자식 조어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이태준의 작가적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 동시에 그의 소설 세계에서는 약간 특이한 작품이다. 혼탁한 사회에서 초라하게 밀려난 존재인 소설가와 선생의 자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세속적인 가치보다 우위에 놓는 한편, 예술을 존중하는 주제의식이 '김'으로 대변된 현실 사회의 기성 가치 체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는 점에서 약간 이질적이다. 이태준은 실제로 패배한 주인공 '현' 속에서 반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딜레탕티즘(이태준의 딜레탕티즘은 일상적이고 비속한 것을 다 귀찮은 것으로 치부케 하고, 비일상적이고 '고운' 것만을 애호할 만한 것으로 생각케 한다. 거기에서 그의 주인공들의 생활의 패배가 연유한다.)과 상고취미(尙古趣味)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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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다음 글에 대한 이해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정거장에 나온 박은 수염도 깎은 지 오래어 터부룩한 데다 버릇처럼 자주 찡그려지는 비웃는 웃음은 전에 못 보던 표정이었 다. 그 다니는 학교에서만 지싯지싯※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전체에서 긴치 않게 여기는, 지싯지싯 붙어있는 존재  았다. 현은 박의 그런 지싯지싯함에서 선뜻 자기를 느끼고 또 자기의 작품들을 느끼고 그만 더 울고 싶게 괴로워졌다. 한참이나 붙들고 섰던 손목을 놓고, 그들은 우선 대합실로 들어왔다. 할 말은 많은 듯하면서도 지껄여 보고 싶은 말은 골라낼 수가 없었다. 이내 다시 일어나 현은, “나 좀 혼자 걸어 보구 싶네.” 하였다. 그래서 박은 저녁에 김을 만나 가지고 대동강가에 있는 동일관이란 요정으로 나오기로 하고 현만이 모란봉으로 온 것이다. 오면서 자동차에서 시가도 가끔 내다보았다. 전에 본 기억이 없는 새 빌딩들이 꽤 많이 늘어섰다. 그중에 한 가지 인상이 깊은 것은 어느 큰 거리 한 뿌다귀※에 벽돌 공장도 아닐 테요 감옥도 아닐 터인데 시뻘건 벽돌만으로, 무슨 큰 분묘와 같이 된 건축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현은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경찰서라고 했다.
- 이태준, 「패강랭」에서 -

* 지싯지싯 : 남이 싫어하는지는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만 짓궂게 자꾸 요구하는 모양
* 뿌다귀 : 뿌다구니의 준말로, 쑥 내밀어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

 

① ‘현’은 예전과 달라진 ‘박’의 태도가 자신의 작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② ‘현’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박’을 통해 자신을 연민하고 있다. 

③ ‘현’은 새 빌딩들을 보고 도시가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④ ‘현’은 시뻘건 벽돌로 만든 경찰서를 보고 암울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다.

【해설】 정답 

‘버릇처럼 자꾸 찡그려지는 비웃는 웃음은 전에 못 보던 표정이었다’에서 ‘현’이 ‘박’을 보고 예전과 달라진 면을 찾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이것이 자신의 작품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볼 수는 없다.

② ‘박의 그런 지싯지싯함에서 선뜻 자기를 느끼고’, ‘한참이나 붙들고 섰던 손목’을 통해, ‘현’이 ‘박’의 처지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대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박’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가 자신을 연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③ ‘전에 본 기억이 없는 새 빌딩들이 꽤 많이 늘어섰다’는 것을 통해, ‘현’ 이 새 빌딩들을 보고 도시가 많이 변화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④ ‘어느 큰 거리 한 뿌다귀에 벽돌 공장도 아닐 테요 감옥도 아닐 터인데 시뻘건 벽돌만으로, 무슨 큰 분묘와 같이 된 건축이 웅크리고 있’다는 을 통해, ‘현’이 시뻘건 벽돌로 만든 경찰서를 보고 암울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태준, 패강랭(浿江冷)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1930년대, 평양 대동강가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현실 비판적, 서정적, 의고적 분위기
- 주제
* 식민지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의 비애
* 예술가 정신의 고고함이 지켜지지 않는 세태에의 절망
* 일제에 의해 말살되어 가는 전통에 대한 애정과 민족의식
- 갈등 :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현과 김의 갈등)
⇒ 이 둘 사이의 갈등이 정점에 이르는 것은 예술에 관한 문제 때문이다. '김'은 '현'에게 이제 '방향 전환'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 방향 전환이란 일본어로 소설을 쓰거나, 조선어로 쓰더라도 팔릴 만한 글을 쓰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말을 듣자 '현'의 감정은 마침내 폭발해 버린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우린 이래봬두 예술가다! 예술가 이상이다!"라는 말이다. '현'이 '김'에게 '우리는 예술가다'라고 외치는 것은 말 그대로 속물들의 세계에 맞서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제목인 '패강랭(浿江冷)'⇒ '패강랭'은 '패강이 얼었다'는 뜻으로, 배경을 통해 화자의 쓸쓸한 마음을 감정이입한 것이다. '패강'은 대동강의 별칭이다. 또한 이 작품의 마지막 단락의 '밤 강물은 시체와 같이 차고 고요하다.'의 한자식 조어이기도 하다.

- 해제: 이 작품은 조선이 일제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로 전락하고, 조선어에 대한 교육과 조선어를 통한 저작 활동마저 위축되어 가던 일제 강점기 말의 암울한 현실과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소설이다. 이태준은 실속을 차리기 위한 방향 전환을 강조하는 부회 의원 ‘김’처럼 일제의 정책에 동조하는 이들과, 조선어 교육 위축으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교사 ‘박’, 민족의 현실을 비애에 젖어 바라보는 작가 ‘현’ 같은 이들을 대비하여 당시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이런 말과 이런 글자로 글을 쓰는 우리의 어두워지는 심사를 어설프게나마 나타내 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던 이태준은 본모습을 잃고 폐허가 되어 버린 평양의 풍경과, 작중 인물 ‘현’이 읊조리는 ‘이상견빙지’라는 말을 통해, 조선 전체가 처한 위기 상황을 암시하려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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