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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건국 가치, 공화, 민주, 공화당, 민주당

Jobs 9 2021. 2. 1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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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민주당과 공화당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며 다른 정당이 집권하기 어려운 양당제 국가라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주 의회 같은 경우에는 주마다 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지역정당들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제치고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도 한다.

1776년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독립전쟁에 가담한 13개 주들은 각각 주권국가이면서 동시에 연합체의 형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연합체 방식에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 1787년 연방헌법이 제정됨으로써 마침내 미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미국은 왜 독립을 선언하고 또 연방국가를 창건하게 됐을까?

미국 독립선언문을 보면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고, 이런 기본권에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쓰여 있다. 즉, 국가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지키는 것이 미국 독립의 기본정신임을 독립선언문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미국사학자들은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자유주의가 미국 건국의 가장 중요한 이념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 대한 자유주의 해석은 새로운 도전을 받게 된다. 바로 개인의 자유보다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공화주의가 미국 건국의 핵심이념이었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공화주의로 미국 건국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저서는 1967년 하버드 대학의 버나드 베일린Bernard Bailyn교수에 의해 출판되었다. 그의 공화주의 역사해석은 그간 간헐적으로 주장되던 공화주의 담론을 미국 역사학의 핵심 화두로 올려 놓았다. 이어 1969년 베일린의 제자 고든 우드Gordon S. Wood교수가 『공화국의 창건』(The creation of the Republic)을 출판함으로써 공화주의는 미국 독립뿐 아니라 연방 헌법제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정치 이념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 논문에서 저자는 공화주의를 설득력 있는 역사이론으로 발전시킨 이 『공화국의 창건』의 핵심 쟁점을 살펴본다. 


미국 독립 과정에서 공화주의의 역할

우드는 『공화국의 창건』 서론에서 ‘사상이 인간의 행동을 지배한다’며 이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시에 미국의 독립혁명 역시 사상의 혁명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이념적 혁명은 독립으로부터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치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은 새로운 형태의 정부를 만들어냈을 뿐 아니라 고전적인 정치 담론을 현대적 정치이론으로 재구성했다.

저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우드는 영국에서 시작된 공화주의가 어떻게 미국의 독립혁명에 사상적 토양이 되었는지 보여준다. 식민지인들은 영국의 공화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영국의 부당한 과세에 대항하는 논리를 제공받았다. 특히 식민지인들에게 가장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저작물은 급진적 휘그주의자들의 작품이었다. 권력에 대한 휘그주의자들의 “질시와 의심”은 영국의 권력에 대한 식민지인들의 저항을 정당화해주었다. 독립혁명 직전까지 식민지인들은 급진 휘그파의 공화주의에 대한 글을 읽고, 재인용하고, 출판하며 하나의 거대한 사상적 흐름을 만들어냈다.

우드는 미국 혁명을 주도했던 존 애덤스, 알렉산더 해밀턴, 토마스 제퍼슨 같은 인물들 모두 영국의 공화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영국이 전례 없던 세금을 미국 식민지에 부과하는 것은 영국 정치가 미덕(virtue)을 잊어버리고 부패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식민지의 미덕을 수호하기 위해서 그들은 부패한 영국사회에서 독립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영국 사회로부터 독립하는 데는 여러 장애가 놓여있었다. 그 중 하나가 왕의 부재였다. 18세기에는 모든 법적 윤리적 권위가 왕으로부터 나왔기 때문 왕이 없는 사회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면 무엇이 그런 권위를 대신할 것인가? 이런 문제의 해답으로 식민지인들이 찾아낸 것이 공화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왕 없는 공화정을 넘어 미덕의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는 개인이나 파벌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의 선(public good)을 위하여 정치가 행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17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선언은 곧 미덕의 정치를 실시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미덕의 정치 즉, 공화정을 위한 독립 열기는 빠르게 번져갔다. 이미 5월 10일 대륙회의는 각 주에 공화정을 실시하기 위한 헌법 제정을 권고한 상태였으며, 주 헌법들은 시민을 권력의 근원으로 삼았다. 또 행정과 사법이 독립적인 기관으로 조직되었지만 행정의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를 권력의 중심에 두었다. 이어 사법심사권에 대한 사상도 생겨났다. 영국에는 없었던 헌법이란 개념이 생기면서 일어난 변화였다고 우드는 강조한다.

독립 지도자들은 13개 주 공화국에서 공공의 선이 실천되는 진정한 공화정치가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같은 목적과 이념을 가진 국민들이 주인이 되었기 때문에 왕정이나 귀족정치 때 겪었던 부패가 사라지고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공화정치는 예측과 달리 순조롭게 실현되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다고 해서 국민들이 모두 같은 이익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종의 사람들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치적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들 역시 유능하고 미덕을 갖춘 지도자들이 아니었다. 지역민들의 이익이 훨씬 중요하게 여기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인물이 선출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미국 공화정은 위기에 빠졌다. 공화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화정치의 중심이 된 주를 통제하는 것이 필요했다. 주보다 우위의 권위가 있어야 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 지도자들은 주를 통합한 중앙정부의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주와 중앙정부의 권한관계가 문제였다. 이론적으로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주권을 의회를 통해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연방의 창설은 상위기관이 만들어진다는 것, 곧 주의 독립성에 대한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생각한 방안이 연방제였다. 연방제는 주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중앙정부가 존재하는 중복적 구조이다. 하지만 두 정부가 병존하는 구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연방주의자들은 국민 주권론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주권의 소유자인 국민은 주가 필요하면 주를 창건할 수 있고, 또 연방이 필요하면 연방정부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즉, 주 정부에는 주 정부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고 연방정부에는 연방정부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의 주권에서 두 가지 정부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미국 공화주의자들은 거대한 중앙정부를 만들어낸다면 지역의 이익을 초월한 미덕을 갖춘 인물이 국민의 대표로 선출될 것이라 생각했다. 주보다 큰 규모의 공화국이 창건되면 졸부가 아닌 진짜 부와 미덕을 가진 천부적 귀족이 의회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연방헌법을 제정하다

연방은 연방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창설되었다. 역사에 유례가 없는 방식이었다. 헌법을 제정하는 방안으로 제헌회의가 고안되었는데, 제헌회의는 통상적인 의회와는 달리 제헌을 목적으로 구성하는 특별 대표회의였다. 헌법은 의회의 개정 대상이 될 수 없고 국민 전체의 의지가 담긴 최상위 법이어야 했다. 

연방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양원제의 채택이었다. 연방 창설을 주도한 연방주의자들이 양원제를 주장한 것은 하원의 독주를 방지하자는데 숨은 뜻이 있었다. 상원은 하원과 달리 훨씬 적은 규모로 구성함으로써 대표의 자질을 높이고자 했다. 또한 연방제의 담보자 역할과 하원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 국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한 고전적 공화주의자들과는 달리 연방주의자들은 국민을 여러 가지 이익을 가진 이질적 공동체로 파악했기 때문에 구현 가능한 제도였다.

전통적 공화주의자들과 달리 새로운 미국식 공화주의자들은 공화국의 성패를 미덕에만 기대지 않았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대중들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창안해낸 것이다. 연방정부가 바로 그것이었다. 또한 민주적 요소를 갖고 있으면서 궁극적으로는 공화정의 성공을 보장하도록 만든 제도적 장치가 바로 연방헌법이었다. 모든 권력은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가 만든 헌법에 의해 창설된 행정부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 역시 국민의 대표라는 법적 성격을 갖게 되었다. 


우드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검토


저자는 우드의 『공화국의 창건』을 해석하고 그것의 연구사적 의미를 밝힌 후 말미에 그럼에도 몇 가지 남는 의문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우선 우드는 확대된 공화국을 통해 좀 더 나은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규모가 커진다고 어떻게 지도자의 자질에 질적 변화가 생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없다.

또한 저자는 권력분립에 대한 우드의 해석도 수용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본다. 우드는 국민이 주권자이기 때문에 권력남용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었다고 보는데, 저자는 당대의 이해를 무시한 채 권력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독립선언문 정신이나 연방헌법에 권리장전을 첨부한 것은 자유주의가 강력했다는 증거가 아닌지 되묻는다. 

마지막으로 우드는 미국 정치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연방의 창설 과정에서 공화주의에 민주주의가 가미되었기 때문이라고 보며, 따라서 미국 공화주의는 민주적 공화주의였다고 밝힌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저자는 공화주의 개념 자체에 대한 의문을 드러낸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당연히 공화주의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차라리 미국 민주주의라고 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저자는 『공화국의 창건』은 영국에서 나온 정치 이념이 미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미국화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은 미국의 예외주의를 보여주는 연구서라고 보고 있다.

미국 독립과 제헌 과정에서 공화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논문에서 소개된 우드의 역사관 또한 인상적이다. 우드는 역사를 연구하는 이유가 불안한 현재를 위해 편안한 답변을 찾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적어도 역사 연구가 “불안한 현재와 예측불허의 미래를 감수하게 해 주는 한 가지 방식”임은 분명하지만, 역사를 통해 얻게 되는 지혜는, 과거의 인물들이 그들 자신들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 속에서 발버둥 쳤던 사실들을 이해함으로써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지혜와 겸손 그리고 삶의 비극성을 배운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한계 속에서도 역사가 지속된다는 점이다. 혼란한 시국에서 유난히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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