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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3

푸에블로호납치사건, 1968년,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북한 원산항

1968년 1월 23일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Pueblo號)가 북한 원산항 앞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납치된 사건. 푸에블로호는 이날 1월 23일 1시 45분에 동경 127°54′3″, 북위 39°25′ 공해상에서 무장한 4척의 북한 초계정과 출동한 미그기 2대의 위협 아래 나포되어 원산항으로 강제 납치되었다. 함장 중령을 비롯한 6명의 해군장교와 수병 75명, 민간인 2명을 포함한 총 83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푸에블로호는 이 날 정오경 1척의 북한 초계정으로부터 첫 도전을 받았으며, 이 날 하오 2시 32분 “엔진이 모두 꺼졌으며 무전연락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원산항으로 끌려간다.”는 최종 보고를 보내 왔다. 해군함정이 공해상에서 납치되기는 미해군사상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통일혁명당간첩사건, 1968년, 김종태, 신영복

1968년 발표된 대남(對南) 대규모 간첩단사건으로 1971년 재건이 기도되었던 사건. 김종태(金鍾泰)를 정점으로 한 이른바 통일혁명당(統一革命黨, 약칭 통혁당)은 북한노동당의 실질적인 재남지하당(在南地下黨) 조직으로서 전 남로당원·혁신적 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하였다. 김종태는 북한노동당의 대남사업총국장 허봉학(許鳳學)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미화 7만 달러와 한화 2,250만 원)을 받고 남파된 거물간첩이었다. 통일혁명당은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하려다가 일망타진되었다. 이 사건에 관련되어 158명이 검거되었으며, 그 중에는 문화인·종교인·학생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 중 73명이 송치(23명은 불구속)되었는데, 김종태는 1969..

6·8부정선거 규탄시위,1968년,제7대 국회의원 선거,민주공화당,신민당

1968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정부와 여당의 부정으로 치러진 것에 대해 항의하여 벌인 시위. 1967년 6월 8일은 1963년 민정이양 이후 두 번째로 이루어진 총선거였다. 정부는 제7대 국회의원선거일을 6월 8일로 확정하고 5월 8일 공포하였다. 각 정당은 5월 3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체제를 풀고 총선거에 대비했다. 삼선개헌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은 최소 110석 확보를 목표로, 야당은 과반수 확보를 목표로 선거전에 임했다. 민주공화당 총재인 박정희 대통령은 5월 18일부터 행정시찰을 명목으로 지방유세전을 전개했다. 신민당은 대통령의 지원유세를 불법으로 고발했으나 5월 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의 지원유세를 인정했다. 6월 8일 실시된 선거에서 공개투표, 대리투표, 빈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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