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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3

한일협정반대운동, 1964년, 한일회담반대운동, 한일협정비준반대운동

1964년부터 1965년까지 전개된 한일회담과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한 야당, 지식인, 학생, 시민들의 대규모 시위. 한일협정반대운동은 1964년 3·24시위에서 6·3시위까지 이르는 한일회담반대운동과 1965년 8·27시위까지의 한일협정비준반대운동으로 구분할 수 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기술을 일본으로부터 들여오기 위해 한일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64년 박정희 정부는 ‘3월 타결, 5월 조인’으로 조기타결 방침을 굳게 세웠다. 경과 이에 3월 9일 야당과 재야세력들은 ‘대일저자세외교반대범국민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회담반대 강연회를 개최했다. 한편 대학가에서는 3월 24일서울대·고려대·연세대·대광고 등에서 한일회담 즉각 중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전개되었고, 이후 전국으로 ..

인민혁명당사건,1964년,1974년,1차 인혁당사건,2차 인혁당사건,사법살인

1964년 8월과 1974년 4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민혁명당이 한국의 국가변란을 기도하였다고 발표된 사건. 1964년 8월 국가변란을 기도한 대규모 지하조직인 인민혁명당(이하 인혁당)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한일회담반대 학생데모를 ‘배후조종’한 것으로 중앙정보부에 의해 발표된 ‘인민혁명당사건’(1차 인혁당사건)과 1974년 4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하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발표된 ‘인혁당재건위원회 사건’(2차 인혁당사건)을 말한다. 1. 1차 인혁당사건 1960년 4·19 이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운동 단체인 민주민족청년동맹(민민청), 통일민주청년동맹(통민청),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등이 조직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쿠데타세력은 4·19 시기 조직..

육삼항쟁, 한일회담 반대운동, 6·3시위, 1964년

1964년 6월 3일에 일어난 한일회담 반대시위와 관련된 일련의 항쟁. 6·3항쟁은 한일회담 반대운동, 6·3시위라고도 한다. 이 항쟁이 전개된 기간은 서울에서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최초로 벌어진 1964년 3월 24일부터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6월 3일까지를 지칭한다. 6·3항쟁은 이후 한일협정비준서가 조인된 1965년 12월까지 펼쳐진 한일협정반대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한일국교정상화는 1951년 10월 20일 예비회담에서 시작되었으나, 7차례 본회의를 거쳐 1965년 6월 22일에 조인될 때까지 14년이 소요되었다. 비타협적인 태도로 회담이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승만 정권 시기와 달리, 박정희 정권은 근대화를 지상목표로 했기에 부족한 자금을 한일회담 성사를 통한 대일청구권으로 조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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