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5월 25일의 계엄령 선포로부터 같은 해 7월 7일의 제1차 개정헌법 공포에 이르기까지 전시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정치적 소요사건. 1950년 5월 30일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의 결과, 무소속이 의원정수의 60%에 해당하는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되었고,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 등 기존의 정당들은 원내 소수세력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원내 세력분포의 재구성은 대통령직의 연임을 노리던 이승만(李承晩)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이 형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승만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형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정당의 조직을 추진하였고, 이와 동시에 1951년 11월 28일 대통령 직선제와 상·하 양원제를 골격으로 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 중 신당, 즉 자유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