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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3

학병동맹사건, 1946년, 신탁통치, 학병동맹, 반탁진영

1946년 신탁통치 문제를 둘러싼 학병동맹측과 반탁진영 간의 충돌을 계기로 벌어진 사건. 학병동맹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일제시기 강제로 징집됐던 학병 출신들이 만든 사설군사단체이다. 왕익권(王益權)과 이춘영(李春永) 등이 주도하고, 초기에는 이념의 구분 없이 학병 출신들을 대상으로 조직되어 8·15 직후 경찰서를 접수하거나 치안유지 등을 전개하고, 향후 국가 수립 이후 군대창설의 주역이 되겠다는 목표 아래 활동했다. 『학병』이라는 잡지를 발간하며 1945년 12월 자신들의 경험으로 만든 연극 「피어린 기록」을 공연하여 얻어진 수입금 34,000원을 전재민 돕기 성금으로 서울신문사에 기탁하고 학병 징집일인 1월 20일을 ‘학병의 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1945년 10월 중순경 좌익계 청년단..

정읍발언, 1946년, 단독정부, 이승만

1946년 정읍에서 단독정부수립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이승만의 발언. 반탁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는 가운데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미국과 소련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개최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미군정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었다. 좌익 중심의 찬탁운동과 우익 중심의 반탁운동의 대결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1946년 6월 3일,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이승만은 정읍에서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을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라는 정치적 발언을 했다. 이 발..

미소공동위원회,1946년,신탁통치,모스크바3상회의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할 목적으로 미소 점령군에 의하여 1946년에 설치되었던 공동위원회. 제2차세계대전의 종결 뒤 개최된 모스크바 삼국 외상회의에서는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미·영·중·소에 의해 최장 5년 간의 신탁통치를 실시할 수 있다고 결정하였다. 또한 임시정부 수립을 원조하고 남북 분단으로 인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양 점령군 사이에 공동위원회를 설치할 것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1946∼1947년 사이에 1차의 공동회담과 2차에 걸친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미국과 소련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하여 아무런 성과도 없이 무산되고 말았다. 내용 한국의 임시정부 수립과 이를 원조하기 위한 미소 양국 간의 공동위원회 설치를 규정한 모스크바 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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