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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2

브나로드운동,1931년,동아일보,농촌계몽운동

동아일보사가 일제의 식민통치에 저항하기 위해 일으킨 농촌계몽운동의 하나. 동아일보사는 1931년부터 1934년까지 4회에 걸쳐 전국 규모의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제3회까지 이 운동을 ‘브나로드’로 부르다가 민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름이라 하여 제4회부터 ‘계몽운동’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금지 조처로 계속하지 못하였다. 내용 원래 ‘브나로드(v narod)’는 제정(帝政)러시아 말기에 소련의 지식인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민중 속으로 가자.’는 뜻의 러시아말 구호이다. 이 구호를 내세우고 1874년 수백 명의 러시아 청년학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 뒤부터 이 말은 계몽운동의 별칭으로 사용되었는데, 동아일보사는 뒤에 ..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1931년,길림성(吉林省),만보산,한인 농민,중국 농민 충돌

1931년 7월 2일 중국 길림성(吉林省) 장춘현(長春縣)만보산 지역에서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사이에 일어났던 충돌 사건. 일제는 1910년 우리 나라를 강점한 이후 우리 나라와 만주에 일본인을 이주시키고자 하였다. 일본인의 한국 이민은 동양척식주식회사와 불이흥업 등의 설립을 통한 농토의 침탈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농토를 잃은 대다수의 한인 농민들은 만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일제는 한국 농민의 만주 이주를 일본인 이주의 전위로서 이용하려고 하였다. 이렇듯 재만 한인이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에 이용되면서 재만 한인을 둘러싼 중일 양국의 대립이 첨예화되었다. 즉, 중국 동북 지방에 이주한 재만 한인을 누가 지배하느냐 하는 침략과 저항의 상반된 저의가 중일 양국의 중요한 쟁점이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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