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6월 조선국권회복단의 단원이 대거 체포되었던 사건. 조선국권회복단은 단군(檀君)을 받들고 신명을 바쳐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할 것과 만주와 연해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족지도자와 연결, 대규모의 항일운동을 전개할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1915년 1월 15일 대구광역시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安逸庵)에서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이시영(李始榮) 등이 시회(詩會)를 연다고 가장하고, 경북지방의 유림들을 포섭, 항일운동결사를 조직하였다. 조직은 통령(統領)에 윤상태, 외교부장에 서상일, 교통부장에 이시영·박영모(朴永模), 기밀부장에 홍주일(洪宙一), 문서부장에 이영국(李永局)·서병룡(徐丙龍), 권유부장에 김규(金圭), 유세부장에 정순영(鄭舜永), 결사부장에 황병기(黃炳基) 등으로 구성되었다.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