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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3

한일병합조약, 1910년, 경술국치, 강제병합, 데라우치 총독

1910년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강제로 체결한 조약. 경술국치조약·일제병탄조약이라고도 한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한국의 주권을 침탈하기 위해 러일강화조약(포츠머스조약)에서 일본측 전권위원의 결의 표명으로, ‘일본국 전권위원은 일본국이 장래 한국에 있어서 취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조치가 동국의 주권을 침해하게 될 경우 한국 정부와 합의한 뒤 이를 집행할 것을 여기에 서명한다.’는 내용을 회의록에 넣었다. 이는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침탈할 경우 반드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고 집행하겠다고 국제적 약속을 하면서 열강의 양해를 구한 것이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일제는 무력으로 일거에 한국을 집어삼키지 못하고, 국제법상 한국의 황제와 정부의 동의가 있을 때에 한해 합법..

안악사건,1910년,서간도무관학교설립, 안명근, 김구, 배경진, 박만준, 한순직

1910년 11월 안명근(安明根)이 서간도(西間島)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안명근은 한일합방이 강제로 체결되자 서간도로 이주하였다. 그 곳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자 1910년 11월 입국하였다. 우선 황해도 부호들을 방문, 이원식(李元植)·신효석(申孝錫)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냈다. 신천 발산(鉢山)의 민병찬·민영설 등에게 보조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지하고 있던 권총으로 위협하며 ‘조국광복의 큰 뜻을 모르는 자’라고 질책한 뒤 평양으로 떠났다. 민병찬·민영설 등은 즉시 재령헌병대에 밀고해 안명근은 1910년 12월 평양역에서 일본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서울 경무총감부로 압송되어 심한 ..

데라우치암살미수사건,1910년,안명근(安明根),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신민회

1910년 12월 안명근(安明根)이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寺內正毅)를 사살하려던 항일투쟁. 1910년 10월 1일부터 위압을 떨치기 시작한 조선총독부는 이 의거를 계기로 105인 사건을 일으켜 민족지도자 윤치호(尹致昊)·양기탁(梁起鐸)·이승훈(李昇薰) 등을 전국에 수배, 일제히 검거하였다. 경과와 결과 이 의거에 주동적 임무를 띤 안명근은 종형 안중근(安重根)의 쾌거를 본받아 치밀하게 거사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안씨 일족에 대한 감시가 혹심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동지를 규합하여 총독 등 일제의 침략 수뇌부를 폭살, 제거할 계획을 수립하고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한 뒤 서간도에 잠시 이주하였다. 그 일대에 무관학교(武官學校)를 건립하여 무장독립군을 양성할 원대한 계획도 병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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