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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7년 2

이시애의 난,1467년,세조

1467년(세조 13) 세조의 집권 정책에 반대해 이시애가 일으킨 반란. 이시애는 길주 출신으로, 함길도를 근거로 한 호족 토반(土班)이었다. 1458년 경흥진병마절제사, 1461년 행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1463년 회령부사로 있다가 어머니의 상을 당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원래 함길도는 조선의 왕실 발상지였을 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북방 이민족과 접해 있는 특수 사정을 고려해 지방관은 인망 있는 호족 중에서 임명해 대대로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남방의 백성을 이주시켜 여진세력을 꺾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왕권을 장악한 세조는 중앙집권 체제 강화의 일환으로 북도 출신의 수령을 점차 줄이고 서울에서 직접 관리를 파견하였다. 이러한 집권책은 북도인의 불만을 샀다. 호패법(號牌法)..

건주여진정벌, 建州女眞征伐,1467년,세조,1479년,성종,건주여진

조선 초기 건주여진을 정벌한 사건. 이 정벌은 조선 정부 단독으로 두 번, 명나라와 함께 한 번을 실행하여 세 차례에 걸쳐 토벌을 감행하였다. 건주여진은 남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부르던 말이다. 건주여진은 고려시대에는 명나라에 정복되어 군정(軍政)으로 통치되었다. 1403년(태종 3)에 명나라는 건주위(建州衛)를 설치했으며, 1450년(세종 32)에 건주좌위를 두고, 여진에 대한 회유책을 써왔다. 건주여진은 조선과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원했는데, 조선에서도 회유책을 썼으나 차차 그들이 오만하게 변방을 침범하자, 태종·세종대에 걸쳐 4군6진을 설치하여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세조 때에 와서는 국내 문제의 어려움과 그들의 요청으로 4군을 철폐하였다. 그런데 이 4군 철폐 이후 여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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