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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건적 2

흥왕사의 변, 1363년, 공민왕, 김용, 홍건적

1363년(공민왕 12)에 김용(金鏞)이 왕을 살해하려고 흥왕사 행궁(行宮)을 침범한 사건. 1359년에 뒤이어 1361년에 홍건적(紅巾賊) 10여 만의 무리가 재차 침입하였다. 이 때 정세운(鄭世雲)이 총병관(摠兵官)이 되어 안우(安祐)·이방실(李芳實)·김득배(金得培)·김용·최영(崔瑩) 등과 함께 싸워 적을 물리쳤다. 이렇게 외적을 물리친 지 며칠이 안 되어 고려의 장신(將臣) 사이에는 왕의 신임과 군공(軍功)을 시기하여 서로 싸우는 비극이 일어났다. 김용은 평소에 사이가 나쁜 정세운의 공을 시기한 나머지 왕지(王旨)를 위조하여 안우·이방실·김득배로 하여금 정세운을 죽이게 하고 그 죄를 뒤집어씌워 모두 죽였다. 그리고 복주(福州)에서 돌아와 흥왕사의 행궁에서 거처하던 공민왕을 죽이고자 하였다. 결국 공..

복주천도(福州遷都),1361년,공민왕, 홍건적,제2차 침입,복주(福州),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1361년(공민왕 10) 11월 홍건적(紅巾賊)의 제2차 침입 때 공민왕이 개경에서 복주(福州)로 도읍을 옮긴 사건. 복주천도(福州遷都)는 원나라 말엽 홍건적의 발흥이라는 동아시아 정세의 변동과 연관되어 있다. 홍건적은 홍두적(紅頭賊)·홍적(紅賊)이라고도 하는데, 머리에 붉은 수건〔紅巾〕을 둘렀으므로 홍건적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13세기 전반 한족(漢族)이 중심이 되어 하북성(河北省) 영평(永平)에서 몽고족(원)의 지배에 대한 저항을 시작하였다. 당시 한산동(韓山童)·유복통(劉福通) 등이 홍건적의 유명한 지도자였으며 이들은 원의 통치질서를 크게 와해시켰다. 홍건적의 일부는 원나라 군사에 쫓겨 요동 지역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공하였다. 홍건적의 고려 침공은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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