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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상호방위조약 2

휴전반대국민대회, 1951년, 포로석방, 한미상호방위조약

6·25전쟁의 당사자인 한국의 주장과 의지를 전적으로 무시한 채 휴전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자극받은 국민이 궐기한 대회. 통일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백과 의지를 전세계에 일깨워 주고, 휴전이 성립된 이후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경우 이에 대처할 수 있는 미국의 보장을 받기 위한 목적을 달성한 범국민적인 운동이었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전쟁의 확전을 우려한 유엔과 자유진영이 휴전을 모색하게 되면서부터 통일의 가망성은 희박해졌다. 이러한 정세하에서 미국은 1951년 5월 17일에 한국전쟁의 목적을 정치 목표와 군사 목표로 분리하여 먼저 군사 목표부터 추구함으로써 휴전협상을 통하여 쌍방의 적대 행위를 종식시키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뒤를 이어 6월 1일에는 유엔이 ‘38도선 부근에서 휴전한다는 것..

한미상호방위조약, 1953년

1953년 10월 1일 한국과 미국간에 조인되고 1954년 11월 18일에 발효되었으며 상호방위를 목적으로 체결된 조약. 1953년 10월 1일 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남한) 방위를 위하여 외국과 맺은 군사 동맹으로서, 이는 최초이며 지금까지 유일한 동맹조약이다. 이 조약의 체결배경을 보면 1950년 한국전쟁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전면남침으로 개시된 한국전쟁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과 중공군(당시)이 참전하여 국제전쟁으로 확대되어 전쟁은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따라서 1951년 6월 미국과 구 소련을 비롯한 공산군측간에 휴전이 제의되어 7월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에게 휴전을 반대하고 북진을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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