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재위:702~737) 왕.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본래 융기(隆基)였으나 뒤에 흥광(興光)으로 고쳤다. 신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효소왕의 동모제(同母弟)이다. 효소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왕비는 704년(성덕왕 3)에 승부령(乘府令)이던 소판(蘇判) 김원태(金元太)의 딸 성정왕후(成貞王后, 또는 嚴貞王后)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성덕왕 15년에 왕궁에서 내보내고,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 소덕왕후(炤德王后)를 계비로 맞이하였다. 성덕왕이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국인들의 추대를 받아 즉위했음을 감안하면, 그는 자신이 무열왕과 신문왕의 정통임을 인식시켜 왕권의 위상을 높이려고 다방면에서 노력하였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러한 노력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