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 화왕산성전투에 참전한 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경상남도 의령 출신. 곽위(郭瑋)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곽지번(郭之藩),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 어머니는 진주강씨(晉州姜氏)이다. 조식(曺植)의 외손서이며, 김우옹(金宇顒)과는 동서 사이이다. 1585년(선조 18) 34세의 나이로 별시(別試)의 정시(庭試) 2등으로 뽑혔다. 그러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발표한 지 수일만에 전방(全榜)을 파해 무효가 되었다. 그 뒤, 과거에 나갈 뜻을 포기하고 남강(南江)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인 기강(岐江) 위 돈지(遯池)에 강사(江舍)를 짓고 평생을 은거할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 머문 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