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중앙정보부 4

이수근 사건, 조선중앙통신사,이수근(李穗根), 1969년,중앙정보부,배경옥,간첩사건,위장귀순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李穗根)이 남측에 귀순하여 살다가 1969년 1월 여권을 위조하여 해외로 출국하여 체포된 후 간첩으로 몰리게 된 사건. 북한의 고위 언론인이었던 이수근은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탈출하여 귀순하였다. 이후 그는 여교수와 새로 결혼도 하고, 중앙정보부 판단관으로 대우를 받으며 반공강연 등을 하면서 남쪽에 정착하였다. 그러던 중 이수근은 돌연 1969년 1월 27일, 북에 두고 온 원래 처의 조카 배경옥(裴慶玉)과 함께 여권을 위조하여 출국하였다. 이들은 홍콩을 거쳐 캄보디아로 향해가다가 베트남 사이공 공항에서 중앙정보부 직원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이수근이 애초부터 간첩활동을 목표로 위장귀순을 했고, 남측에서 수집한 정보를 북한에 전..

서울대생내란음모사건,1971년,서울대 제적생 4명,사법연수원생 1명,중앙정보부,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국가보안법

1971년 11월 13일 서울대 제적생 4명과 사법연수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위해 내란 음모를 모의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 1971년 10월 15일 박정희 정부는 서울 전역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학원질서 확립을 위한 특별 명령을 발표한다. 그에 따라서 서울지역 7개 학교에 위수군 진주, 전남대를 비롯한 8개 대학에 휴업령, 23개 대학에서 177명 제적, 7개 대학 74개 써클 해체, 5개 대학 14종 미등록 간행물 폐간 등의 조치가 취해졌고, 학생운동을 비롯해 민주화운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위수령이 발동된 직후 중앙정보부는 1971년 11월 13일에 서울대생 4명과 사법연구원생 1명이 국가 전복을 모의했으며, 그 가운데 4명이 국가보안법 제1조 반국가단체구성 위반과 형법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구..

박동선 사건,코리아게이트,1976년,김형욱,김상근,중앙정보부

박동선의 미국 정치계 로비활동이 문제가 되어 발생한 사건. 1976년 10월 25일『워싱턴포스트』지는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은 워싱턴 거주 한국인 실업가와 공작원이 미국 의회의원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매년 50만 달러 내지 100만 달러를 현금이나 선물 혹은 정치자금으로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미국언론들은 닉슨 정권하의 불법도청 사건이었던 ‘워터게이트’에 빗대어 코리아게이트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는 보도통제를 통해 1976년 12월 정부가 이 사건을 발표할 때까지 일반에게 알리지 않았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한 보완책과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한 특별지원책이 미국 의회로부터 승인되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미국 의회에 대한 로비를 강화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

동백림사건,동베를린,1967년,중앙정보부,공안사건,윤이상,이응로

1967년 7월 8일에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공안사건. 중앙정보부는 1967년 7월 8일부터 17일까지 7차에 걸쳐 ‘동백림(당시 동독의 수도인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단’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정보부는 “문화예술계의 윤이상·이응로, 학계의 황성모·임석진 등 194명이 대남 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되었다”고 발표했다. 중앙정보부의 발표에 따르면 사건 관계자들은 1958년 9월부터 동백림 소재 북한대사관을 왕래하면서 이적(利敵)활동을 한 데 이어 일부는 입북 또는 노동당에 입당하고 국내에 잠입하여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또한 중앙정보부는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민족주의비교연구회도 여기에 관련된 반국가단체라고 발표했다. 이후 사법부는 동백림 및 민족주의비교연구회 사건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