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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2

정약용(丁若鏞),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조선후기 『경세유표』, 『목민심서』, 『여유당전서』 등을 저술한 유학자.실학자. 자는 미용(美鏞).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으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는 이 유배기간 동안 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고, 이 저술을 통해서 조선 후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사상을 제시하여 ‘묵은 나라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치·..

정약전(丁若銓), 조선후기, 전적, 병조좌랑, 자산어보, 논어난, 동역, 송정사의, 정약용 형

조선후기 전적,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매심(每心). 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출신. 정항진(丁恒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지해(丁志諧)이고, 아버지는 진주목사 정재원(丁載遠)이다. 어머니는 해남윤씨(海南尹氏)로 윤덕열(尹德烈)의 딸이다. 정약용(丁若鏞)의 형이다. 어릴 때부터 매우 재주가 있고 총명했으며 성격이 작은 일에 얽매이지 않아 거리낌이 없었다. 소년시절부터 서울에서 이윤하(李潤夏)·이승훈(李承薰)·김원성(金源星) 등과 깊이 사귀면서 이익(李瀷)의 학문에 접하여 심취하였다. 이어 권철신(權哲身)의 문하에 나아가 학문을 더 깊이있게 배웠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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