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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 2

예송 논쟁, 두문자 암기, 조선 현종, 서인 남인의 효종 조대비 상복

조선 붕당 전개 사화→이기→예송→환국→탕평→세도 예송 논쟁은 무의미한 싸움 같지만 시험에 자주 출제된다.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서인과 남인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였다. 정체성은 집권하느냐 마느냐의 절체절명의 문제다. 지금 야당 되면 국회의원 떨어지고 백수 되고 말지만 당시엔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 조선의 전체 붕당사를 개괄하면... 조선시대 훈구와 사림의 죽고 사는 대립 즉 사화 무갑기을 4대 사화이후 사림 집권 사림은 동서분열 동인은 다시 남북분열 동은 움직임動 있고(분열) 서인은 서서 그자리 쭉~~(광해군, 인조반정까지) 기갑 예송 이후 경기갑 환국, 서인,남인,소론 순으로 집권 이후 무신이임 무고의 옥/신임사화/이인좌 난/임호화변 이후 (영정조 탕평 잠시 있다가) 붕당의 끝, 세도정치 세도정치 ..

경자분소사건(庚子焚疏事件), 조선 현종, 기해예송(己亥禮訟),남인 윤선도(尹善道),삼수부(三水府) 유배

조선 현종 때 기해예송(己亥禮訟)에서 남인 윤선도(尹善道)가 함경도 삼수부(三水府)로 유배된 사건. 윤선도가 서인과 예설(禮說)로 대치된 상황에서 기년설(朞年說)의 부당함을 상소하자 상소문이 불태워지고 자신은 유형(流刑)에 처해졌다. 1660년(현종 1) 4월 효종의 어머니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 문제가 기년복으로 정해진 이튿날, 윤선도는 송시열(宋時烈)의 체이부정(體而不正)주 01)에 입각한 기년복 주장에 대해 “종통(宗統)은 종묘사직을 계승한 임금에게 돌리고, 적통(嫡統)은 이미 죽은 장자에게 돌린 것으로, 이를 대통을 계승한 임금에게 적용한 것은 큰 잘못이며, 이는 임금 세력이 굳건하고 굳건하지 못함과 나라의 운수가 길고 짧음을 점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소를 올려 큰 파란을 일으켰다. 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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