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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립 2

기축옥사(己丑獄事),1589년,선조,정여립, 동인, 서인

1589년(선조 22)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으로 동인이 다수 처벌된 사건. 1589년(己丑年) 10월에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였다 하여, 3년여에 걸쳐 그와 관련된 1,000여명의 동인계(東人系)가 피해를 입은 사건이다. 발단은 1589년 10월 황해도관찰사 한준(韓準)과 재령군수 박충간(朴忠侃), 안악군수 이축(李軸), 신천군수 한응인(韓應寅) 등이 전 홍문관수찬이었던 전주사람 정여립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들의 고변에서 열거된 정여립의 역모죄상은 그가 벼슬에서 물러난 뒤, 전주와 진안·금구 등지를 내왕하면서 무뢰배와 공·사노비들을 모아 ‘대동계(大同契)’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월 활쏘기를 익혔다는 것이다. 또 당시 민간에 유포되어 있던 도참설을 이용해 민심을 현혹시킨 뒤, 기..

건저문제, 建儲, 건저의사건(建儲議事件), 1591년, 선조, 왕세자 책봉, 동서분당, 정철, 정여립

1591년(선조 24) 왕세자 책봉 문제를 둘러싸고 동서분당 사이에서 일어난 정치적인 사건. 건저, 즉 왕세자 책봉 문제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연려실기술》에는 ‘신묘년(辛卯年)의 시사(時事)’라고 기록되어 있다. 선조는 왕비의 소생인 원자(元子)가 없었고, 다만 후궁 소생의 왕자만이 있었으므로 왕세자 책립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 때 이 건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좌의정이었던 정철(鄭澈)이 우의정 유성룡(柳成龍), 부제학 이성중(李誠中), 대사헌 이해수(李海壽) 등과 같이 상의하고 선조에게 건저할 것을 주청하려 하였다. 또, 정철은 이 건저 문제를 당시 영의정이었던 이산해(李山海)에게도 상의하고, 건저 주청 문제를 최종 결정하기 위해 자리를 함께 하기로 했으나, 이들은 두 번이나 약속을 어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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