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 삼례에서 제2차로 기포한 전봉준(全琫準)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孫秉熙) 등 북접은 협력해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의 북상 길목인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10월 9일논산에서 합류한 4만 명의 양측 주력부대는 노성(魯城)을 거쳐 공주에서 30리 떨어진 경천(敬川)에 주둔하였다. 여기에는 낙오한 청군(淸軍)도 40∼50명 가량 가담하였다. 이에 대항해 구상조(具相祖)·성하영(成夏永)이 이끄는 경리청(經理廳) 병정과 장용진(張容鎭) 등의 통위영(統衛營) 병정을 중심으로 한 관군 810명과 우영장(右營將) 이기동(李基東)이 지휘하는 감영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공주를 부여와 논산 양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