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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 2

제물포조약,1882년,임오군란,조선,일본,불평등조약

1882년(고종 19) 8월 30일(음력으로 7월 17일) 임오군란으로 빚어진 양국 간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 6개조의 본조약과 2개조의 수호조규속약(修好條規續約)으로 되어 있다. 임오군란 이후 청일 양군의 한성진주와 흥선대원군의 청국 납치 문제 등이 민씨정권의 재집권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이후 군란 뒤처리를 위한 조ㆍ청ㆍ일 3국의 절충 협의가 다각도로 벌어지게 되었다. 일본은 군란 때 일본세력의 조선 침투에 민족적 의분을 품고 있던 병사들과 시민들에 의해 공사관이 습격당했고, 별기군(別技軍) 교관 호리모토(堀本禮造)등 수 명이 살해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이끄는 청군 3,000명이 한성에 진주하면서 청국의 정치적 영향은 커졌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의..

강화도 조약(1876)-조일수호조규, 조미수호통상조약,임오군란, 조일수호조규속약, 제물포조약, 임오군란,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조일통상상정 83

두문자 암기 ● 강화도조약 이후 조약 순서- '수일(이는) 미수(다) 이 규약(은) 무역 통일' 수일 조일수호조규, 강화도조약 미수 조미수호통상조약 이(임) 임오군란 한발빨리 1882 규약 조일수호조규속약, 제물포조약임오군란 후속대책으로 같은날 조인 무역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82 통일 2차조일통상상정 83 ● 강화도 조약 체결 배경 국내 정세의 변화 : 흥선 대원군의 하야(1873) → 고종의 친정 체제 수립, 민씨 세력이 정권 주도 → 청과 전통적인 외교 관계 유지, 일본에 유화 정책을 폄 자율적 배경 : 통상 개화론의 대두(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 타율적 배경 : 일본에서 정한론 대두, 일본의 포함 외교 →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문호 개방 강요(1875) ● 성격 조선의 문호 개방, 최초의 근대..

잡스 한국사 2020.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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