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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2

이자겸의 난,1126년,인종,이자겸,척준경,최사전,인주이씨

1126년(인종 4)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李資謙)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 이자겸의 난은 척준경(拓俊京)과 그의 군사적 배경이 연계되었기 때문에 이·척(李拓)의 난이라고도 한다.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자겸을 인종이 자신의 측근세력을 종용하여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이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그는 왕궁을 침범하여 국왕파 신료들을 제거한 다음 왕을 유폐시키며 정치를 독단하였다. 그러나 인종은 척준경을 이자겸과 갈라서게 해야 된다는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였다. 얼마 안 있어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들에게 포박되어 유배되었으며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 고려의 문벌귀족들은 왕권을 견제하면서 그들의..

묘청의 난,1135년,인종,서경천도,서경세력

1135년(인종 13) 묘청 등이 서경(西京)에서 일으킨 반란. 1126년 이자겸(李資謙)의 난 이후 국내외 정세는 극도로 불안하였다. 안으로는 이자겸의 난으로 궁전이 불타고 정치기강이 해이해졌고, 밖으로는 여진족의 외교적인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 시기에 서경출신의 승려 묘청은 풍수지리설에 의거, 고려가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개경(開京)의 지덕(地德)이 쇠약한 때문이라고 역설하였다. 따라서, 나라를 중흥하고 국운을 융성하게 하려면 지덕이 왕성한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풍수지리설이 크게 성행하고 있어서 그는 인종의 총애와 함께 백수한(白壽翰)·정지상(鄭知常) 등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인종은 1127년 이후 서경에 자주 거둥했고, 그의 건의에 따라 서경의 명당인 임원역(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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