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성균관대사성, 대사간,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전라남도 나주 출신.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아버지는 기진(奇進)이고, 어머니는 강영수(姜永壽)의 딸이며, 기묘명현(己卯名賢: 조선 중종 14년(1519)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조광조 등을 가리킨다.)의 한 사람인 기준(奇遵)이 그의 계부(季父)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이황과의 서신 교환을 통하여 조선유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칠논변(四七論辨)을 전개하였다. 생애와 활동사항 1549년(명종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55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승문원부정자와 예문관검열 겸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1563년 3월 승정원주서에 임명되었다. 그 해 8월 이량(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