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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2

을사사화,1545년,명종,대윤,소윤,윤원형,윤임,문정왕후

545년(명종 즉위년) 왕실의 외척인 대윤과 소윤의 반목으로 일어나, 대윤이 소윤으로부터 받은 정치적인 탄압. 기묘사화 이후 사림이 후퇴한 사이에 신묘삼간(辛卯三奸 : 중종 20년 신묘년에 사형된 沈貞·李沆·金克愊을 말함.)과 김안로(金安老)와의 싸움과 같은 권신간의 치열한 정권다툼이 일어났다. 김안로는 심정 등의 탄핵으로 귀양중 정신(廷臣)과 내통해, 심정 등이 유배중인 경빈 박씨(敬嬪朴氏)를 왕비로 책립할 음모를 꾸몄다고 탄핵하였다. 이로써 반대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한 김안로 일파는 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과 결탁해 권세를 누리면서, 뜻에 맞지 않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몰아내겠다고 위협해 조정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문정왕후(文定王后)주 01)를 폐출하려고 음모를 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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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역벽서사건은 정미사화(丁未士禍)라고도 한다. 1547년(명종 2) 9월 경기도 과천 양재역(良才驛)에 문정왕후가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李芑) 등이 권세를 농락하고 있다는 내용의 벽서가 발견되었다. 이기 등은 이러한 벽서를 붙인 것은 을사사화(乙巳士禍)의 잔당이 행한 짓이라며 그들의 처벌을 주장하였다. 결국 대윤(大尹)의 잔당으로 지목된 봉성군(鳳城君) 이완(李岏), 송인수(宋麟壽), 이약수(李若水) 등이 사형당하고, 권발(權撥), 이언적(李彥迪), 정자(鄭磁), 노수신(盧守愼), 유희춘(柳希春), 백인걸(白仁傑) 등 20여 명이 유배당하였다. 윤씨 집안의 피 터지는 싸움 중종은 첫 번째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를 폐출한 뒤 반정을 주도했던 윤임(尹任)의 여동생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와 결혼하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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