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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3

이탕개의 난,1583년,선조,회령,여진족

1583년(선조 16) 이탕개를 중심으로 회령 지방의 여진족(女眞族)이 일으킨 반란. 세종대의 육진 개척으로 동북 지방의 여진족에 대한 경략은 대체로 큰 문제가 없이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중종 이후 내정이 문란해짐에 따라 북방에 대한 통제력도 차츰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틈을 타 여진족이 준동하기 시작해, 자주 국경을 침범하며 약탈행위를 자행해 변장(邊將)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그들을 토벌하기 위한 출병론(出兵論)이 대두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반대론자에 의해 실행되지 못하고 계속 소극적인 회유책으로 일관해 오던 중 1583년 마침내 ‘이탕개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이탕개는 선조 초 우리 나라에 귀화한 여진인으로, 육진에 출입하며 조정으로부터 관록과 여러 가지 후대를 받아온 자였다. 158..

북송 멸망(1127년), 여진족 , 금나라, 아구타, 해상의 맹약, 정강의 변

만주에는 퉁구스계의 여진 부족이 널리 분포되어 반농반목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찍이 발해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발해 멸망 이후에는 요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들 중 이미 요의 지배하에 편입된 세력은 '숙여진', 그렇지 않은 부족들은 '생여진'으로 불리었다. 생여진 중에 하얼빈 남쪽 아십하(阿什河) 강 유역에 거처하던 완안부(完顔部)가 추장 완안아구타를 중심으로 급격히 성장하여 12세기 초 동아시아에 돌풍을 몰고 왔다. 여진 부족의 통합은 아구타의 할아버지 오고내 때 시작되어 숙부인 영가(盈歌) 때 가속화되었다. 아구타(阿骨打)는 취약한 요의 내부를 간파한 후 마침내 1115년, 여진족 최초의 국가를 건설하고 국호를 대금이라 하니, 그가 금 태조이다. 금은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요의 진압군에 ..

거란족, 여진족, 말갈족, 만주족, 돌궐족

● 여진족=말갈족=만주족 만주족은 중국의 동북지방인 만주지역에 거주하는 퉁구스계 민족의 하나입니다. 만주족이라는 이름은 중국 최후의 왕조인 청(淸)을 세우고 그 지배층이 되었던 남방 퉁구스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역사상 숙신(肅愼)·읍루(婁)·물길(勿吉-중국 남북조시대)·말갈(靺鞨-중국 수당시대)·여진(女眞-10세기 전후) 등으로 불렸습니다. 부여·고구려·발해·요(遼)·고려 등 주변 민족이 세운 나라의 지배와 영향을 받다가 12세기에 이르러 아구다[阿骨打]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금(金)을 세워 한때 만주와 북중국을 지배했으나 칭기즈칸 시절 금이 몽골에게 멸망한 뒤 다시 부족단위로 반농경·반유목 생활로 돌아갔다가 16세기말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 1616년 누루하치(奴爾哈齊)의 주도로 후금(後金)을 세웠으며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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