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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3

삼강행실도(三綱行實道), 성종, 설순, 열녀, 충신, 효자

조선전기 직제학 설순 등이 왕명으로 삼강(三綱)의 모범이 될 만한 우리나라와 중국의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만든 언행록.교훈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0호. 종이에 목판 인쇄. 관판본(官版本). 4권. 각 권 세로 36.4~38.4㎝, 가로 19.6~22.1㎝.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 세로 24.4~25.3㎝, 가로 16.5~17.8㎝. 유계(有界). 반엽(半葉) 13행(行) 22자(字).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양산시립박물관 소장. 내용 1431년(세종 13)에 직제학 설순(偰循)에 의해 완성된 『삼강행실도』를 성종 연간에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각 35인씩 선별하여 개찬(改撰)한 판본의 재간본(再刊本)이다. 1권과 2권은 열녀, 3권은 충신·효자, 4권은 효..

폐비윤씨사사사건, 성종, 폐비윤씨, 정의왕후, 소혜왕후, 연산군

조선 성종의 계비 윤씨가 부덕한 소치로 폐비가 되고 그 뒤 사약을 받아 죽은 사건. 윤씨의 아버지는 판봉상시사(判奉常寺事) 기무(起畝)이며, 어머니는 신씨(申氏)이다. 연산군의 어머니이다. 1473년(성종 4)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면서 숙의(淑儀)에 봉해졌다. 이후 성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1476년 왕비로 책봉되고 이 해 세자 융(0xF92C : 뒤의 연산군)을 낳았다. 왕비가 된 뒤 투기가 매우 심해 국모로서 부덕한 일을 자주 일으켰다. 1477년에 비상(砒霜)을 숨겨 왕과 왕 주위의 후궁을 독살하려 한다는 혐의를 받아 빈(嬪)으로 강등되려는 수모를 겪었다. 이어 1479년에는 왕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낸 일로 왕과 모후인 인수대비(仁粹大妃)의 격분을 유발해 이 해 여러 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비..

건주여진정벌, 建州女眞征伐,1467년,세조,1479년,성종,건주여진

조선 초기 건주여진을 정벌한 사건. 이 정벌은 조선 정부 단독으로 두 번, 명나라와 함께 한 번을 실행하여 세 차례에 걸쳐 토벌을 감행하였다. 건주여진은 남만주 지방에 살던 여진족을 부르던 말이다. 건주여진은 고려시대에는 명나라에 정복되어 군정(軍政)으로 통치되었다. 1403년(태종 3)에 명나라는 건주위(建州衛)를 설치했으며, 1450년(세종 32)에 건주좌위를 두고, 여진에 대한 회유책을 써왔다. 건주여진은 조선과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면서 화친을 원했는데, 조선에서도 회유책을 썼으나 차차 그들이 오만하게 변방을 침범하자, 태종·세종대에 걸쳐 4군6진을 설치하여 그들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세조 때에 와서는 국내 문제의 어려움과 그들의 요청으로 4군을 철폐하였다. 그런데 이 4군 철폐 이후 여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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