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3년(선조 16) 이탕개를 중심으로 회령 지방의 여진족(女眞族)이 일으킨 반란. 세종대의 육진 개척으로 동북 지방의 여진족에 대한 경략은 대체로 큰 문제가 없이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중종 이후 내정이 문란해짐에 따라 북방에 대한 통제력도 차츰 기능이 약화되었다. 이러한 틈을 타 여진족이 준동하기 시작해, 자주 국경을 침범하며 약탈행위를 자행해 변장(邊將)을 살해하는 일도 있었다. 이에 그들을 토벌하기 위한 출병론(出兵論)이 대두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반대론자에 의해 실행되지 못하고 계속 소극적인 회유책으로 일관해 오던 중 1583년 마침내 ‘이탕개의 난’이 일어난 것이다. 이탕개는 선조 초 우리 나라에 귀화한 여진인으로, 육진에 출입하며 조정으로부터 관록과 여러 가지 후대를 받아온 자였다. 1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