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보빙사 2

수신사, 조사시찰단, 영선사, 보빙사, 외교사절단 순서 두문자 암기

외교사절단 순서 두문자 암기 : 수조영보 1. 수신사(일) - 1차(1876): 강화도 조약 이후 파견, 김기수 『일동기유』 저술 - 2차(1880): 김홍집이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가져옴 - 3차(1882): 박영효 파견, 태극기 처음으로 공식 사용 2. 조사시찰단(일, 1881년 4월) - =신사유람단 - 일본 정부의 기구와 산업 시설 시찰, 비공식적(암행어사로 위장) - 박정양, 홍영식, 어윤중, 윤치호 등 62명 파견 3. 영선사(청, 1881년 9월) - 근대 무기 제조술을 배우기 위해 김윤식을 단장으로 유학생 파견, 기기창 설립(1883)에 영향 4. 보빙사(미, 1883년) - 보빙報聘 -답례로서 외국을 방문하는 것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이후 - 미국의 공사 파견에 답례로 민영익, ..

보빙사절단,報聘使節團,1883∼1884년,최초 미국 유럽 외교사절단,민영익,홍영식,서광범,보빙사

1883∼1884년간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유럽국가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보빙 報聘 - 답례로서 외국을 방문하는 것. 보빙사절단은 미국의 공사파견에 대한 답례와 개화·자강정책 추진에 필요한 인적·물적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최초로 미국에 파견되었다. 그들은 1883년 9월부터 1개월 여 동안 미국에서 자주외교를 전개하고 개화정책에 필요한 미국인의 파견을 요청하였으며, 근대식 시설과 제도·문물을 살펴보았다. 그들 중 민영익 등은 유럽의 각국을 시찰하였다. 그들의 시찰은 조선이 호의적인 미국관을 형성하고 개화정책을 추진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 배경 중국이 임오군란 후 조선의 내정에 직접 간섭하는 상황에서 1883년 5월 미국은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특명전권공사 푸트(Lucius H. Foot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