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병오박해 당시의 신부. 본관은 김해(金海). 세례명은 안드레아. 초명은 재복(再福), 보명(譜名)은 지식(芝植). 충청남도 당진 출신. 아버지는 김제준(金濟俊)이다. 증조부 김진후(金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金澤鉉)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1831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崔方濟)·최양업(崔良業)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巴里外邦傳敎會東洋經理部)로 가게 되었다. 그 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