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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갈 2

관미령전투,387년,진사왕,백제,말갈,청목산,청석동

387년(진사왕 3)에 있었던 백제와 말갈(靺鞨)의 싸움. 백제는 개국 초기부터 동예(東濊)로 추정되는 말갈의 부단한 침입을 받아왔다. 387년 백제군은 말갈군의 침입을 관미령에서 방어하다가 패하였다. 관미령의 위치에 관해서는 서기전 9년(온조왕 10) 말갈군을 곤미천(昆彌川)에서 방어하다 패한 백제군이 청목산(靑木山)으로 후퇴한 기록에서 그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청목산을 개성 송악산이라 했다. 이는 백제 초기의 영토상태로 보아 근사하다고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송악산 수십리 북쪽에 있는 청석동(靑石洞) 부근을 청목산으로 비정하는 게 더욱 적절하다. 청석동은 역사적으로 남북교통로요, 오래된 관방시설(關防施設)이 있는 곳이다. 청목산 혹은 청목령을 청석동으로 비정한다면, 곤미천..

거란, 여진, 말갈, 숙신, 선비, 돌궐, 흉노, 훈족

● 거란 5세기 이래 요하(遼河) 상류인 시라무렌(Siramuren) 유역에서 여러 부족으로 분열되어 거주하였는데, 당나라 말기에 통일의 기운이 일어나면서 916년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가 여러 부족을 통합한 다음 황제를 칭하고 거란을 건국하였다. 이에 물자가 풍부한 중원(中原)으로 진출하기 위해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화북의 연운(燕雲) 16주(州)를 획득, 947년 국호를 요(遼)로 개칭한 다음 계속 남진정책을 실시했으나 960년 송이 건국됨으로써 대치하는 상태가 되었다. 대제국을 형성한 거란은 북쪽의 초원지대와 남쪽의 농경지대로 구분되었기 때문에 이원적 호한분치제도(胡漢分治制度)를 형성하였다. ● 돌궐 투르크(Türk)의 음을 따서 한자화한 말로, 처음에는 철륵(鐵勒:예니세이강 상류, 바이칼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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