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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군 2

황토현전투, 1894년, 동학농민군, 전라감영군

1894년(고종 31)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맞아 크게 승리한 전투. 1894년 3월 20일전라도 무장에서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中)·김개남(金開男) 등의 남접계 동학지도자들을 중심으로 4,000여 명의 동학농민군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태인 주산리에서 태인접주 최경선(崔敬善)이 이끄는 300여 명의 농민군, 말목장터에 집결해 있던 수백 명의 농민군과 합세하여 고부 관아를 점령하였다. 경과와 결과 고부 관아를 점령한 농민군들은 4일간 머물며 화약고를 불태우는 등 폐정을 혁파한 뒤, 3월 25일경 백산(白山)으로 진출하였다. 그런데 백산은 고부 관아로부터 북쪽에 있는 높이 50m도 되지 않는 작은 언덕이었으나 인근의 곡창지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요새지였다. 농민군이 백산에 진을 치고 ..

우금치전투,1894년,동학농민군,전봉준, 손병희, 모리야

1894년 11월 동학농민군이 공주의 우금치에서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 삼례에서 제2차로 기포한 전봉준(全琫準) 등 남접과 보은에 집결한 손병희(孫秉熙) 등 북접은 협력해 충청감영 소재지이며 서울로의 북상 길목인 공주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10월 9일논산에서 합류한 4만 명의 양측 주력부대는 노성(魯城)을 거쳐 공주에서 30리 떨어진 경천(敬川)에 주둔하였다. 여기에는 낙오한 청군(淸軍)도 40∼50명 가량 가담하였다. 이에 대항해 구상조(具相祖)·성하영(成夏永)이 이끄는 경리청(經理廳) 병정과 장용진(張容鎭) 등의 통위영(統衛營) 병정을 중심으로 한 관군 810명과 우영장(右營將) 이기동(李基東)이 지휘하는 감영병이 주둔하고 있었다. 동학농민군은 공주를 부여와 논산 양 방면에서 협공한다는 작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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