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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파 2

인조반정,1623년,광해군,이귀,서인,이이첨,대북파,능양군 종(綾陽君倧)

1623년(광해군 15) 이귀(李貴) 등 서인 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당인 이이첨(李爾瞻) 등의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 종(綾陽君倧)을 왕으로 옹립한 정변. 광해군은 즉위 직후 정세 변화에 따라 왕위를 위협할지도 모를 동복형 임해군(臨海君)과 유일한 적통(嫡統)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경계하였다. 그리하여 먼저 임해군이 불궤(不軌)주 02)를 꾀하였다는 죄목으로 진도로 귀양보냈다가 다시 교동으로 옮겼다. 그 뒤 대북파 정인홍(鄭仁弘)·이이첨 등이 임해군의 처형을 주장하자, 이원익(李元翼)·이항복(李恒福) 등 중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감 이직(李稷)에게 살해하게 하였다. 그리고 칠서지옥(七庶之獄)주 03)을 일으키고, 이를 계기로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을 죽이고 영창대군을 강화에 유폐하..

계축옥사(癸丑獄事),1613년,광해군,대북파,영창대군

1613년(광해군 5) 대북파(大北派)가 영창대군(永昌大君)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여 일으킨 옥사. 칠서지옥(七庶之獄) 선조 말엽부터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 간의 암투가 심각하였다. 1608년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가 집권하였다. 대북파는 먼저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구실로 소북파의 영수인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의 사사(賜死)를 주도하고 소북파를 축출시켰다. 이후 영창대군 및 그 주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을 지속하였는데, 때마침 1613년 3월 문경의 새재[鳥嶺]에서 상인을 죽이고 은 수백 냥을 약탈한 강도사건이 일어났다. 범인 일당은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의 서자 응서(應犀), 심전(沈銓)의 서자 우영(友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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