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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3

안시성전투, 645년 ,보장왕,고구려,당나라,고연수, 고혜진, 양만춘,고당전쟁

645년(보장왕 4) 고구려가 당나라 군대와 안시성에서 벌인 공방전. 644년 당나라 태종(太宗)은 상당한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고구려 침공을 결심했다. 이를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군량·선박·각종 공성구(攻城具) 등을 준비하는 한편, 소수의 병력을 파견해 고구려 변경지대의 형세를 정탐했다. 이어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영류왕과 대신들을 살해하고 집권했으므로 성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구실을 내세워 고구려 침공을 실천에 옮겼다. 경과 645년 4월 1일 이세적(李世勣)이 이끄는 당군의 선봉은 회원진(懷遠鎭)주 01) 쪽으로 진군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통정진(通定鎭)주 02)에서 요하(遼河)를 건너 고구려 침공을 개시하였다. 그들은 고구려의 방어체계를 혼란시키기 위해 신성(新城)주 03)·건안성(建安城)주 04..

나당전쟁(羅唐戰爭),백제 고구려 멸망,신라, 당나라,7년 전쟁

백제와 고구려 멸망 후 신라와 당나라가 7년간 싸운 전쟁. 나당연합군에 의해 660년 백제가 멸망하였고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였다. 백제와 고구려 멸망 후 한반도의 영토 문제로 신라와 당이 대립하게 되었고, 결국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나당전쟁(羅唐戰爭)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7년간 이어졌다. 670년 3월 신라의 오골성 선제 공격으로 시작되어, 672년 8월 석문 전투에서 신라가 크게 패하였다. 나당전쟁의 분수령은 675년 9월에 발생한 매소성 전투였으며, 이 전투에서 신라가 승리하면서 전세는 신라로 기울었다. 이후 676년 11월 기벌포 전투를 끝으로 전쟁은 마무리되었다. 역사적 배경 7세기 삼국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특히 642년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大耶城)을 함락하면서, 신라의 위기감이 고..

기벌포전투,676년,문무왕,기벌포(伎伐浦),신라,당나라,대당전쟁

676년(문무왕 16) 11월에 기벌포(伎伐浦)에서 신라의 해군이 당나라 해군을 크게 깨뜨린 전투. 기벌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약간의 이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백강(白江)은 곧 지금의 금강이고, 금강의 하구가 곧 기벌포라고 알려져 있다. 고구려·신라·백제가 서로 자국의 발전을 노려 싸우던 중 553년에 신라·백제 공수동맹(攻守同盟)이 와해되어 더욱 상호항쟁이 격화되었다. 이에 648년에 신라는 당나라와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리하여 신라와 당나라 군대는 660년에 기벌포에서 연합해 백제의 사비성(泗沘城)을 함락시켜 백제를 멸망시켰고, 다시 668년에는 신라와 당나라 군대가 평양 근처에서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러나 당나라는 백제와 고구려 지역을 직접 지배하고 신라까지 복속시키려 하면서 신라의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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