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9년(숙종 15) 후궁 소의 장씨(昭儀張氏) 소생을 원자로 정호(定號)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장악한 사건. 숙종은 1680년 10월에 숙종의 첫 왕비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서거하자, 민유중(閔維重)의 딸을 계비(繼妃)로 맞았다. 그런데 인현왕후가 원자를 낳지 못하는 가운데 1688년에 숙종이 총애하던 소의 장씨(張氏)가 아들을 낳자, 숙종은 이듬해 그 아들을 원자로 삼아 정호할 것을 명하였으나, 서인은 이를 반대하였다. 즉, 영의정 김수흥(金壽興)을 비롯한 이조판서 남용익(南龍翼), 호조판서 유상운(柳尙運), 병조판서 윤지완(尹趾完), 공조판서 심재(沈榟), 대사간 최규서(崔奎瑞) 등 노론계는 한결같이 중전의 나이가 아직 한창인데, 두 달 만에 후궁 소생을 원자로 정함은 부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