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신. 김방경(金方慶)의 12대손이며,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해 군기시(軍器寺)에 입사하였다. 1581년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주 01)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해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이 되었으나 군사에 관한 건의가 채택되지 않자 사직하였다. 1591년 진주판관이 되어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목사 이경(李璥)과 함께 지리산으로 피했다가 목사가 병으로 죽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의 명에 따라 그 직을 대리하였다. 먼저 민심을 안정시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