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도읍을 압록강변의 국내성(國內城)에서 대동강변의 평양성(平壤城)으로 옮긴 사건. 4세기대 국력이 비약적으로 신장된 고구려는 대폭 늘어난 인구와 영토를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왕권이 필요하였다. 국내성에서 대대로 뿌리를 내린 귀족들의 세력기반을 약화시키고 왕실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왕도(王都)의 건설이 요청되었다. 이와 같은 필요성은 광개토왕 이후 점차 대두되었다. 한편 장수왕의 재위 기간(412∼491) 동안 국제정세는 복잡하였다. 북연(北燕)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쪽으로부터의 압박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서쪽에서 새로 일어난 북위(北魏)는 고구려에게 위협적인 강적이었다. 한편「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 의하면, 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