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견훤(甄萱) 2

견훤(甄萱), 후백제

남북국시대 후백제를 건국한 시조. 재위 892∼935. 본래 성은 이씨였으나, 뒤에 견씨라 하였다. 아버지 아자개(阿慈介)는 상주 가은현(加恩縣)의 농민 출신으로 뒤에 장군이 되었다. 『이비가기(李碑家記)』에서는 진흥왕의 후손인 원선(元善)이 아자개라 하였는데 확인하기 어렵다. 어머니의 성씨는 확실하지 않다. 두 부인을 두었는데, 상원부인(上院夫人)과 남원부인(南院夫人)으로 전해질 뿐이다. 견훤은 장자이며, 동생으로 능애(能哀)·용개(龍蓋)·보개(寶蓋)·소개(小蓋)와 누이 대주도금(大主刀金)이 있었다. 그런데 「고기 古記」에는 광주(光州)의 북촌에 한 부자가 살았는데 그 딸이 지렁이와 교혼(交婚)하여 견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는 어머니의 가문이 광주지역의 호족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

금성전투,후삼국, 왕건(王建),후백제(後百濟),견훤(甄萱),나주싸움,금성(錦城),나주성(羅州城)

후삼국시대 초기에 궁예(弓裔)의 장수였던 왕건(王建)이 나주 일대에서 후백제(後百濟)의 견훤(甄萱) 군에게 크게 이긴 싸움으로서 금성(錦城)이 전라남도 나주의 옛 이름인 데에서 ‘나주싸움’이라고도 함. 견훤은 전라도 지방과 충청도 일부를 차지해 후백제라 칭하고, 궁예는 경기·황해·강원도 등 중부 지방을 장악해 후고구려라 하였다. 왕건은 궁예의 부하로 들어가 중부 지방을 공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왕건의 선조는 대대로 해상 무역에 종사하면서 부를 쌓아 상당한 세력을 키웠으며, 이 지방의 일부 해상 세력과 궁예 휘하의 왕건 세력이 연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궁예·왕건의 세력은 나주를 중심으로 한 서남해안을 장악해, 후백제가 중국과 통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고립시키고 구백제 세력의 분열을 노렸다. 금성전투가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