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 국어/현대문학

산돼지, 김우진, 표현주의극, 장막극

Jobs 9 2022. 5. 17.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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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돼지(1926)

김우진

● 줄거리
제1막 : 주인공 최원봉이 차혁과 바둑을 둔다. 청년회 간부인 원봉은 자신의 주관으로 연 바자회의 수익금 50원을 써 버리고, 이러한 사실을 덮어 주려는 차혁과 싸운다.(발단) / 사람들은 원봉을 '산돼지'라 부른다. 원봉은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정신적 갈등을 일으켜 몽환병에 시달린다. 최 주사의 유언에도 불구하고, 원봉과 정숙, 영순과 차혁이 각각 교제한다.(전개) 
제2막 : 원봉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을 꿈을 통해 알게 된다. 즉, 그는 꿈 속에서 토벌 병정에 쫓기는 동학군의 신세가 된다.(위기) 여러 가지 이유로 원봉은 신경 쇠약증에 걸린다.(절정) 
제3막 : 꿈의 장면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원봉의 애인이었던 정숙이 등장한다. 정숙은 원봉에게 실망하고 유학생 이광은을 따라 일본 동경으로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원봉을 찾아온 것이다. 둘은 서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대단원) 


● 감상 및 이해
이 작품은 주인공 최원봉의 방황과 좌절을 통한 내면적 갈등과 그로 인한 극심한 정신적 갈등 장면을 나열식 기법을 통해 형상화한 희곡 작품이다. 이 작품을 비롯한 근대적 희곡이 나오기 전까지의 한국 희곡들은 대부분 신파극조의 성격을 지닌 것들이었다. 이에 비해 김우진의 희곡들은 이러한 설화적 틀을 벗어나 인간 내면의 갈등과 의식 세계를 파고들면서 근대적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개화기의 좌절된 한국 지식인의 임상 보고서라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작가 자신의 사회 개혁 사상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원봉은 현실과 이상, 봉건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 개인과 사회 문제에 있어서 저항의식을 내보이려 했으나 그것을 이겨 낼 만한 뚜렷한 방향이 제시되지 못한 현실의 울타리에 머물고 만다. 
또 이 작품은 인물의 내면적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표현주의 형식을 상징적 수법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타성화된 기존 의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근대극을 시도해 보려는 김우진의 실험 정신의 소산이었다. 


● 정리하기
- 갈래 → 표현주의극, 장막극(전 3막)
- 성격 → 실험적
- 인물
1) 최원봉 → 청년회 간부. 동학군이었던 부친이 관군에 의해 죽어 최 주사에 의해 양육된다. '산돼지'처럼 괴팍하고 저돌적이다.
2) 차혁 → 청년회 관계자. 원봉의 친구이자 영순의 애인이다.
3) 최영순 → 최 주사의 딸로 원봉과 남매 사이가 되고, 차혁을 좋아한다.
4) 최 주사 댁 → 최원봉과 영순의 어머니
5) 정숙 → 최원봉과 약혼했던 사이. 이광은과 동경으로 도망갔다가 돌아온다.
- 출전 → <조선지광>(1926)
- 제목의 의미 → '산돼지'는 최원봉의 저돌적이고 괴팍한 성격을 드러내는 그의 별명이자 사회 개혁 정신의 상징이다. 산에서 살아야 할 산돼지가 집돼지처럼 집안에 갇혀 있으니 무기력하고 답답한 것은 당연하다. 이는 원봉이 동학 운동가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무력한 현실 사이에서 좌절하는 모습과 연결된다.
- 갈등

인물 갈등 요인 양상 해결
최원봉 ↔ 최 주사 댁 출생의 비밀 최 주사 댁에 대한 비난 오해의 해소
최원봉 ↔ 차혁 영순과의 사랑,
현실 개혁 의지
질투심, 인간적 모멸감 원봉이 정숙과의 새로운 사랑을 이룸.
최원봉 ↔ 최영순 최 주사의 유언(결혼) 차혁과 영순의 교제 원봉이 정숙과 결혼함.


- 주제 → 식민지 지식인의 저항과 좌절, 새로운 삶의 모색
- 특성
1) 우리나라 문예 사상 최초의 표현주의 희곡으로, 신파극만 존재하던 1920년대로서는 전위적인 실험극임
2) 표현주의를 통해 그 시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나타냄으로써 일제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자세를 드러냄.

 

● 참고자료
◆ '산돼지'의 갈등 구조
* 이 작품의 주된 갈등은 동학당이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1920년대 청년 지식인인 원봉의 현실적 무력함 사이의 갈등이다. 원봉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사회와 민족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좌절하고 만다. 이러한 원봉의 상황은 1920년대 우리 나라 지식인이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원봉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청년회와도 갈등을 빚는다. 
*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는 원봉에게는 혁과 영순의 교제도 하나의 갈등이다. 최 주사가 영순과 원봉을 혼인시키라는 유언을 남겼고 원봉도 영순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 원봉의 애인인 정숙은 이광은과 함께 동경에 갔다가 돌아온다. 원봉과 정숙의 갈등이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해소된다. 
 
◆ 표현주의(表現主義)
19세기의 주류였던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의 '모방적' 성격에 반발하여, 삭막한 현실 세계 속에 사는 개인의 깊은 정신의 상태를 그대로 '표현'하고자 한 희곡의 한 유파인 표현주의는, 유럽 문학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모방의 이념에 대항하여, 의식적으로는 외부 모방적인 일체의 요소를 배격했다. 외부의 사실을 그대로 사실로만 받아들이는 정상적인 인물을 버리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있는 인물의 내면적 체험을 나타내려 했으며, 이를 위해 조명, 분장, 무대 장치 등도 인물의 내면 세계를 더욱 효과적으로 암시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이 작품 '산돼지'의 제2막에서도 몽환 장면을 설정하고 그 몽환 장면이 그대로 현실의 최원봉에게 연결되도록 하는 표현주의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표현주의는 다다이즘에 의해 더욱 철저히 추구되었으며, 1925년 이후에는 초현실주의에 많이 흡수되었다. 

 

 

● 대본 읽기

<전략>

차혁 (기가 난 듯이 다리를 세우며) 흥, 끝판에 한 번 탁 대들어 본다. 오냐, 대들어 봐라. (바둑을 놓는다.)
최원봉
 
 
(냉연하게) 네가 말 아니해도 벌써 이렇게 대들어 채지 않았니? (놓는다) 이리로 막아 버리면 네 (여기서 '길'은 바둑길, 즉 바둑수를 의미하지만 작품의 주제의식과 연관지어 볼 때, 식민지 지식인이 겪어야 하는 삶의 고뇌와 새로운 삶의 방향 모색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띤다.)이 어디냐?
차혁 (놓으며) 또 이리로 막아 버리면 네 길은 어디고.
최원봉 (웃으며) 이 넓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놓는다)
차혁 아, 이놈 보게. (생각한 뒤에 놓는다)
최원봉 넓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넓은 세상에 길 없을까 봐. (놓는다.) 넓은 세상에 …….
차혁 (웃으며) 길만 찾지만 하는 수가 있니. 다 죽어 가는 놈이. (놓는다.)
최원봉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놓는다.)
차혁 이 애가 왜 이 모양이다. (놓는다.) 세 집 다 결단 났는데.
최원봉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최원봉의 저돌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임.) 죽더라도 죽을 때까지. (생각한 뒤에 놓는다.)
  <중략>
최원봉
 
 
흥, 나 겉은 산돼지가 그런 소리밖에 더 지를라구요.(여기서 원봉은 스스로를 '산돼지'라고 한다. 즉, 산돼지가 집안에 갇혀 무기력하고 답답하게 지내다보니 집돼지로 퇴화한 것 같은 자신의 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아 ― 니, 한 마디 물어 봅시다. 나 죽으면 영순이를 어떤 데로 시집 보내시려우?
최 주사 댁

잠들기 어렵니? 잠 오는 약 멕여 주랴?(최 주사 댁은 원봉이 과민하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약을 주겠다고 한다. 원봉이 현재 신체적 · 정신적으로 몹시 쇠약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최원봉
 
 
 
 
 
 
천만에, 걱정 마서요. 이것 봐요. 혁이는 산돼지도 못 되고 집돼지(현실 안주형인 차혁을 가리킴)야요, 들돼지도 못 되고. 그러니까 더욱 탈이지요. (웃으며) 그런데 어머니 대답 좀 하서요. 처음에는 그 집돼지를 미워해서 그리 떼어 버리려고 애쓰더니 요새 와서는 왜 또 그리 가까이하려고 애쓰시오? 아 대답 좀 해 보세요. 혹은 집돼지가 진화해서 들돼지가 되는 모양이요? 진화란 말을 아시오, 진보한단 말예요. 그러면 더 이상하지, 집돼지가 들돼지로, 들돼지가 집돼지로 진화하는 법은 있찌만 집돼지가 들돼지로 퇴화하는 수가 있어요? 한번 집돼지가 되어서 구정물 얻어 먹기 시작하면 영영 집돼지로밖에 못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는 왜 그렇게 시종이 변해져요. 왜 아무 말도 없어요. 대답 좀 해 보서요. 어머니는 내 가슴이야 하지만, 내 자슴은 어떤 곡절인 줄을 몰라서 더 아파 못 견디대겠소.
최 주사 댁
 
너는 요새 와서 왜 그리 혁이를 미워하니? 그래도 처음에는 친하게 지내더니, 너부터 말 좀 해 봐라.
최원봉 (웃으며) 어머니는 부끄러워 먼저 말 못 해 주시겠다고요? 그러면 내가 먼저 말하리까?
최 주사 댁 해 봐라.
최원봉
 
 
 
 
뻔한 일 아녜요. 제가 갖고 있던 보석이 이제야 값이 비싼 귀중한 것인 줄 아니까 그런 것 아녜요. 돼지에게 진주를 던져 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여기서 '돼지'는 차혁을, '진주'는 영순을 말한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진다'는 말은 아무런 보람도 바랄 수 없는 쓸모 없는 일을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아까운 진주 같은 보석을 돼지 발 밑에다 던지는 것이 아깝지 않아요? 더구나 위선자인 그 돼지가 내 진주를 빼앗아 가려고 하니 내 속이 얼마나 상하게요. 이왕 돼지 앞에 던져 주려거든 그 더러운 집돼지에다! 더구나 그 진주는 내가 모르기 전부터 내 것으로 맡아 두었던 것을!(최 주사가 딸 영순과 원봉을 결혼시키라고 유언했던 것을 염두에 둔 말)
  <중략>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원봉이는 잠들고 무대는 어두워진다. 그리고 몽롱한 달빛 같은 창백색이 나타난다. 그러나 다만 여름철 그믐달 밤의 하늘과 같이 아무것도 안 보인다. 노래는 다시 누구의 소린지 바스(베이스. 남성의 가장 낮은 음역)와 합창이 되어 가지고 되풀이해 나가는 동안 무대에는 무한한 공간만 채여 있는 것 같다.
 
몇 번 노래가 되풀이해 가다가 제1절이 끝나기 전부터 창백색이 좀 밝아 온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은 병실 대신에 동한(冬寒) 중의 벌판(몽환 장면의 배경)이 나타난다. 완경사의 야산이 나지막해져 온 곳 중복(中腹, 산의 중턱)에 무대가 놓인 셈이다. 왼편으로 숲, 잡목, 오른편으로 언덕. 여기저기 석총(石叢, 돌무덤). 회색 겨울 하늘이 낮게 걸려 있어서 전경을 금시라도 와 누를 것 같다. 지상과 언덕 위에는 약간 흰 눈이 덮여 있고 시시로 회오리바람과 눈싸라기.
이하의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갑자년 동학당 전군 행렬의 판토마임이 지나간다.(원봉의 아버지가 동학과 관련 있음을 암시함.) 오만 년 수운대의(五萬年受運大義) 글자를 쓴 오색의 기폭을 선두로 도중(道衆, 길을 가는 무리들)의 어깨에는 '궁기(弓己)', 등에는 '동심의맹(同心義盟, 동학군이 내세웠던 구호들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이라 박은 삼삼오오의 일대(一隊), 환희와 서계(誓戒, 서로 맺은 약속을 어기면 징벌을 가함)와 격려와 혹은 혼란을 표시하는 판토마임. 천천히 그러나 무거운 수천 리 걸어온 피로된 보조(피곤한 발걸음)로 지나간다. 무대 한참 동안 공허. (몽환 장면의 설정. 동학도들이 관군들에게 끌려 가는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줌. 작품 속에서 원봉은 몽환을 통해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처럼 작가 김우진은 몽환 장면을 설정하여 최원봉의 부모 이야기를 하고 그 몽환 장면이 그대로 현실의 최원봉에게 연결되도록 하는 표현주의 수법을 활용하고 있다.)
병정
 
(산발한 원봉이네(원봉 생모의) 손목을 끌어 잡고 들어온다.) 이년, 씩씩 걸어라. 너하고 같이 가다가는 얼어 죽겠다.(만삭인 원봉이네가 빨리 걷지 못하는 것을 타락함.)
원봉이네
 
 
(비틀비틀하며) 제발 살려 줍시요. 죽으면 죽었지 다시는 더 못 나가겠습니다. (목메인, 그나마 목세인 소리로) 제발 적선 좀 해 주시오. 저는 동학 역적놈을 남편으로 둔 죄로 이 자리에서 참형을 당해도 원통할 것은 없습니다마는 이 뱃속에 든 어린 애기를 위해서 살려 줍시요. 이 뱃속 애기가 불쌍허지 않어요?
병정
 
 
 
(따구를 붙치며) 웬 잔소리야 잔소리가. 그따윗 소리는 관찰사님 앞에 가서 네 멋대로 지껄이라니까 못 들었니! 썩 걸어. 걷지 않겠니? (병정의 언행은 임신한 원봉이네의 애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매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1920년대 동학 농민 운동의 실패에 따른 동학군과 그 가족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다. 또, 관객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고 연민과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며, 인물과 사건에 더욱 몰입할 것이다.)
원봉이네
 
(두 손으로 합장하며) 이 애기를 위해, 이 뱃속에 든 어린 애기를 위해 제발 살려 줍시오.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병정 에잇, 귀찮아! 그러니까 누가 네 새끼를 찔러 죽인다니? 관가로 가기만 가잔 말이야.
원봉이네
 
더 걸어 가다가는 정말 둘이 다 죽겠습니다. 한 발자국도 떼어 놓지 못하겠어요. 만삭된 이 무거운 몸을 해 가지고 삼십 리나 걸어왔으니 아무리 몸이 튼튼한 년이기로 당할 수가 있습니까?
병정
 
아이구, 이 경을 칠 년아! 너 왜 말을 안 듣니? 아니, 작작 잡아 찢어 버릴까 부다. 너 그러면 그 뱃속에 든 새끼는 쏙 빼놓고 가자꾸나.
원봉이네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시고 그저 이 애기 하나만을 위해 살려 줍시오.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병정


 
 
너 왜 그 애기가 죄가 없다고 하니? 아, 역적놈 애비를 둔 자식이 죄가 없어? 그따윗 소리를 누가 허더니? 사문난적(斯文亂敵, 유교에서 교리를 어지럽히고 사상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죄명을 모르니? 경을 칠 년 같으니. (발길질한다) (역적놈의 애비를 둔 자식 역시 죄인이라는 말로 동학 운동가였던 원봉의 부친으로 인하여 뱃속의 원봉도 당연히 죄인이라는 뜻이다. 이는 당시의 동학군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을 엿볼 수 있는 대사이며 연좌제와 관련이 있다)
원봉이네
 
(비틀거리며 자빠지며) 이 애기가 무슨 죄가 있어요! 땅에 떨어지기 전부터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시오! 오오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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