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경의 탄생 : 인도불경의 번역과 두 문화의 만남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 사회에서 불교는 다른 사상체계들과 달리 종종 용어와 내용이 이질적이고 모호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그 용어와 문헌들이 한 차례의 번역(漢譯) 과정을 거쳐 등장한 것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한편 2세기경부터 거의 1000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인도불교문헌의 한역 작업은 두 문화를 용해하는 용광로로서 기존문화에 새로운 역동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또 방대한 번역물은 중국은 물론 동아시아 불교문화권 사회의 문화지형에 거대한 변용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책은 인도불전의 한역이라는 인류문화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에 주목해 인도와 중국이 만나는 현장을 복원하고 두 문화의 충돌과 융합 과정을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조망한다.
한역불전들은 우리에게 많은 물음을 던진다. 역자는 누구이고 그의 번역 원칙과 태도는 어떤 것인가, 번역물의 역어와 뜻은 타당하며 사상적ㆍ문화적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등등. 이들 물음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史傳류를 중심으로 한 방대한 불교 사료의 고증이 필수적이다. 이들 사료는 역경가들의 생애와 활동, 사상적 성향 등을 확인할 수 있는 1차 자료이기 때문이다.
각 번역물에 채택된 역어와 드러내는 뜻은 원전과의 대비를 통해 타당성과 사상적 배경을 추적해야 한다. 번역물의 의의와 가치는 불교는 물론 중국고유사상의 이념과 실천 체계에 대한 사상사적 분석을 통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작업에는 중국과 인도의 방대한 불교문헌들에 대한 언어학적 접근, 불교사상에 대한 전문적이고 종합적인 식견, 중국고유사상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요구된다. 이 책의 많은 미덕은 여기에서 시작된다.중국불교 형성과 전개의 원천은 일차적으로 한역불전이다. 가장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중국불교사 서술은 우선 이들 문헌의 등장 시점과 내용 추적을 통해 비로소 가능할 수도 있다. 譯經史 연구는 특정 번역가 중심의 단편적 연구나 단순한 문헌학적 목록작업을 넘어 전체적인 조망 아래 번역물의 내용과 파급효과까지를 추적하는 종합적인 작업이 돼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기획은 새롭다.
한역불전의 등장이라는 구체적 사실을 토대로 이 책이 그리는 중국불교사의 큰 그림은 다음과 같다. 중국불교사에서는 불전의 번역을 중심으로 통상 古譯, 舊譯, 新譯 시대로 구분한다. 고역시대에는 안세고, 지루가참, 지겸, 강승회, 축법호 등이 활약한다. 이 시기는 번역어의 문제 및 번역문을 둘러싼 형식(文)과 내용(質)의 갈등에 대한 고민의 시대로서 어학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오역에 가까운 사례가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이 시기는 불교의 전문술어를 유가나 도가의 유사한 개념을 차용해 번역하는 格義적 방법이 도입된다. 도안은 이러한 번역태도를 비판하고 번역자가 지녀야할 마음가짐으로 五失本(원전의 진의를 놓치게 되는 다섯 가지 잘못)과 三不譯(시류나 풍속에 따라 함부로 성인의 원문을 변경해서는 안 되는 세 가지 이유)이라는 번역론을 제창한다. 사상사적으로 볼 때, 안세고의 『안반수의경』 번역은 중국사에서 최초로 불교사상과 수행의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특별하며, 空 사상은 지루가참 등의 반야계 대승경전에서 本無로 번역돼 소개되면서 위진현학과 융합함에 따라 중국사상사는 새로운 전환기를 마련한다.
구역시대에는 구마라집, 담무참, 구나발타라, 보리류지, 진제 등에 의해 많은 대승 및 禪觀 류의 경전, 율전, 중관ㆍ유식 논서가 번역된다. 이 시기는 고역시대의 格義적 이해에 대한 반성을 거쳐 구마라집 등에 의해 내용과 형식에 대한 논란은 종식되고 이상적 번역문이 완성된다. 이미 이 시대에 이르면 불전번역은 국가적 사업으로 수행되며, 한역 대장경에 수록된 대부분의 중요 경전번역이 완료된다. 사상사적으로는 열반학ㆍ삼론학ㆍ지론학ㆍ섭론학ㆍ구사학ㆍ선학 등 각 학파가 출현해 불교학의 백화제방 시대를 연출하며, 특히 불성론은 이후 중국불교의 지배담론으로 정착한다.
신역시대에는 현장, 실차난타, 의정 등이 활약하며, 유식관련 논서와 밀교 경전이 집중적으로 번역된다. 현장은 원초적 번역의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입장에서 직역이라는 번역원칙을 취하고, 五種不飜(산스크리트어를 그대로 음역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5가지 유형의 어휘)이라는 번역기술론을 도입해 유식을 중심으로 한 철학적 논서 번역에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이 시기는 이미 ‘중국적’ 불교의 정착단계로서 인도불전의 진의에 대한 해석학적 노력보다는 이미 번역된 불전에 대한 주체적인 이해와 도식화의 길로 접어든다.
인도불교사상을 대표하는 슈니야/슈니야따(śūnya/śūnyatā, 空, 空性)는 중국어로 번역, 수용되는 과정에서 중국전통사상을 대표하는 無와 관련됨에 따라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산스크리트어 슈니야/슈니야따는 중국어 공으로 번역되나 공은 무와 내용상 혼동의 여지가 많고 실제로 무로 번역돼 불교가 허무주의로 오인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 책은 슈니야/슈니야따가 공 또는 무로 번역되는 과정 및 번역어 공과 무에 대한 중국인들의 이해, 그 후의 중국적 해석의 전개 과정을 추적한다.
즉 슈니야/슈니야따의 한역어가 무에서 공으로 정착되는 데는 초기 역경가에서 구마라집에 이르기까지 200여년이 걸렸으며, 그 후에도 혜문이나 길장 같은 중국사상가들이 사용하는 공에는 여전히 有의 對개념인 무의 흔적이 남아있음을 확인해 위진현학을 중심으로 한 기존문화의 질긴 생명력을 실감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이 책은 초기에 슈니야/슈니야따가 중국어 ‘무’의 의미장으로 편입되는 1차적 해석, 무라는 번역어를 버리고 공을 채용하는 2차적 해석, 번역된 개념과 문헌에 의거해 주체적 이해를 통해 ‘중국적 불교’를 형성해가는 3차, 4차적 해석의 단계로 구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중국불교는 최종적으로 선불교라는 종착역으로 귀착하는 것으로 본다.
이 책은 한국불교 사상전개의 근원과 배경에 대한 관심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국불교 형성과 전개의 토대가 기본적으로 한역불전에 있다고 볼 때, 중국불교의 이해라는 관문을 거치지 않고 올바로 한국불교에 접근하는 일은 어렵다. 중국불교 연구의 전문적인 성과가 극히 미미한 우리에게, 특히 동아시아불교의 출발점인 불전의 번역을 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말한다.
異文化간의 대화 가능성에 대해 이 책은 둘 사이의 ‘완전한’ 상호이해의 길은 멀지만 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놓지 않는다. 즉 상호이해의 걸림돌이 개념 언어로서의 산스크리트어와 이미지 언어로서의 중국어라는 언어적 특성 때문이라면, 관건은 명확성을 장점으로 하는 개념과 생명력을 장점으로 하는 이미지의 조화의 문제에 있다는 작업가설을 이 책은 제시한다. 이 작업가설에 따른다면 우리말의 경우 위의 두 가지 특성을 함께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도불전을 우리말로 직접 번역하게 되면 중국어 번역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상당부분은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인도문화와 우리문화의 대화 가능성에 희망과 기대를 걸어본다.
중국불교사의 매 시점에서 넘치는 지적 호기심과 종교적 사명감에 이끌려 정열을 쏟았던 역경가와 그들의 성과물은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쉽지 않다.
이들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전반적인 연구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다. 예로 唐代 이후만 보아도 중국불교는 또 한 번의 큰 방향전환을 이룬다. 불공, 선무외, 금강지 등에 의해 밀교계 경전들이 대대적으로 번역됐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인들은 설령 불전이 아무리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번역됐다 할지라도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의 사상적ㆍ종교적 상상력을 발휘해 소위 僞經이라 불리는 ‘중국산’ 경전을 수없이 창작하기도 한다. 다양한 한역 경전들을 산스크리트어 원전이나 티벳어 경전 등과 대조해 봄으로써 ‘중국 경전’으로서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작업도 흥미로울 것이다.
한문경전의 출현
중국사회에 불교의 가르침이 본격적으로 수용된 것은 불교경전이 한문으로 번역되면서부터였다. 처음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사람들은 서역에서 건너온 승려들이었다. 중국에 거주하던 서역인들은 자신들이 신앙하고 있던 불교를 중국사회에 전파하기 위하여 불교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한편 서역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중국인들 중에서도 이 새로운 가르침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기 위하여 서역인 승려들의 한문 번역작업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불교가 전해진 초기부터 중국에 이주한 서역출신의 사람들이나 불교를 신앙한 중국인들에 의하여 일부 단편적인 불교의 가르침이나 경전의 구절들이 한문으로 소개되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정식 경전이 본격적으로 번역된 것은 2세기 후반에 활약한 안세고(安世高)와 지루가참(支婁迦讖) 등에 의해서였다.
안식국[安息國, 파르티아] 출신의 안세고는 148년 경 중국에 들어와 20여 년간 30여 부의 경전을 번역하였다. 그가 번역한 경전들은 아비다르마불교주 091계통의 문헌이 대부분인데, 이는 아비다르마불교의 경향이 강하였던 안식국의 불교계 동향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가 번역한 경전 중 특히 불교적 명상수행법인 선관(禪觀) 수행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은 불교수행의 구체적 내용을 알려준 경전으로 널리 읽혔으며 중국 선관수행의 기초를 형성하였다. 안세고의 전기에는 그가 전세의 업보를 갚기 위하여 중국에 들어와 활동한 사실들이 특기되어 있는데, 이는 그가 현세에 미치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널리 홍포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166년에 중국에 들어온 지루가참은 대승불교가 성행하였던 대월지국[大月支國,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던 유목민족의 국가] 출신으로 안세고와 달리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다수 번역하였다. 그는 대승불교의 반야사상을 설하는 『도행반야경(道行般若經)』과 아미타에 대한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는『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등을 번역하였다.
삼국시대의 오나라에서 활약한 지겸(支謙)불과 강승회(康僧會)도 많은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낙양 위치에 이주한 대월지국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지겸은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능통하였다. 후한말 낙양의 혼란을 피하여 강남지방의 오나라로 이주한 그는 이곳에서 많은 경전들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그는 같은 대월지국 출신인 지루가참의 문도들에게 수학하였으며, 그에 따라 지루가참과 마찬가지로 반야 사상과 아미타신앙을 고취하는 대승불교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다. 또한 이미 번역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들도 저술하였다.
강승회는 강거국[康居國 : 사마르칸 지역에 있던 서역의 국가] 출신으로 대대로 인도와 중국을 왕래하는 교역에 종사하다가 중국 남부 교지중국철학서전자화계획위치(交趾, 현재의 베트남 북부지역)지방에 정착한 집안의 일원으로서, 중국어와 서역의 언어에 대한 능력을 배경으로 많은 경전을 번역하였다. 특히 석가의 전생 이야기를 모은 『육도집경(六度集經)』은 당시의 불교신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안세고의 가르침을 계승한 승려들에게 수학하였으므로 아비다르마 불교계통의 경전들을 주로 번역하였고, 안세고 등이 번역한 경전들을 해설하는 주석서도 저술하였다. 247년에 오나라 수도 건업(建業)위치으로 들어간 그는 오나라 왕실의 후원을 얻는 과정에서 부처의 사리에 관한 감응과 전세의 인과에 대한 이야기 등을 널리 퍼뜨렸는데 이러한 경향 역시 안세고의 가르침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후한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한문으로 번역된 불경들이 출현하면서 불교의 가르침은 단순한 기복적 신앙을 넘어서 체계적인 종교 사상으로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에 번역된 경전들은 안세고와 강승회 등에 의해 번역된 아비다르마불교 계통의 경전과 지루가참 및 지겸 등에 의해 번역된 대승불교 계통의 경전이 뒤섞여 있었다. 당시 인도 및 서역에서는 지역에 따라 신앙되는 불교의 성격이 서로 달랐는데, 서역 여러 나라와 교류하던 중국에는 이러한 상이한 경향들이 동시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본래 인도 및 서역에서 시기적, 지역적으로 상이하게 발전되었던 불교의 흐름들이 동시에 중국에 수용되면서 중국불교의 기반을 이루었고, 이후 중국불교는 이들 상이한 흐름을 종합하면서 발전해 갔다.
초기 한문경전이 출현하였던 후한 후기부터 삼국시대까지 불교의 중심지는 중원지방의 장안위치과 낙양, 그리고 남부해안의 교지 및 강남의 건업 등이었다. 이들 중 장안과 낙양은 육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였고, 교지지방은 해로를 통한 서역교류의 중심지로서 일찍부터 그곳에 왕래하는 서역사람들을 통하여 불교가 전해졌던 지역이었다. 또한 건업은 한나라 말기에 전란을 피하여 많은 귀족과 지식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장안과 낙양의 문화가 전해졌고, 오나라가 건국된 이후에는 해상교역을 통하여 서역과의 교류에 접촉하였던 지역이었다. 이와 달리 삼국 중의 촉(蜀)지역에서는 불교가 널리 수용되었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이는 이 지역이 지리적 조건으로 서역과의 접촉이 활발하지 못하였던 것과 관련되는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