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철산군에서 태어난 양세봉1896~1934은 어려서 가정이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동네 서당에서 소사사정. 학교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사람로 일하며 어깨너머로 한학을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국내 곳곳에 수탈의 손을 뻗은 일제의 전횡에 이웃 주민들이 고통을 받던 상황. 13세의 나이였던 양세봉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건에 감동을 받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양세봉이 가장의 책임을 지게 되었다. 그는 임재순이라는 여인과 혼인한 뒤 가정을 이끌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더이상 국내에서 가족을 먹여살리기 힘들어졌다. 이에 1917년 한겨울, 양세봉과 그 가족들은 압록강을 건너 중국 영릉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한 중국인의 소작농으로 일하던 양세봉은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