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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 선 채 마시는 술집, 목로주점, 木爐酒店, 나무탁자 주점

Jobs 9 2021. 9. 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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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술집이란 말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대개 부담 없는 '쌈직한 술집'이란 뜻이다. 그러나 의외로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선술집은 술꾼들이 서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선술집이라 부르는 것이다. 국고(國故)에 해박했던 김화진(金和鎭) 선생은 선술집에 대해 귀중한 기록을 남겼는데, 이에 의하면 선술집에서는 백 잔을 마셔도 꼭 서서 마시고 앉지 못하였다고 한다. 만약 앉아서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술꾼 패거리가 "점잖은 여러 손님이 서서 마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주저앉았담. 그 발칙한 놈을 집어내라"라고 하면서 시비를 걸었고, 이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위 그림에도 앉아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선술집을 다른 말로 목로주점이라고 한다. '목로'는 술잔을 진열하는 길고 좁은 목판이다. 그런데 앞의 그림에는 그런 목판이 없다. 솥 옆에 사발이 네 개 있을 뿐이다. 술잔은 주모 뒤의 시렁에 얹혀 있다. 김화진의 증언은 20세기 초의 것이라, 신윤복의 시대와 다른 것인가? 아니면 선술집마다 약간씩 시설에 차이가 났던 것인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면 김화진의 증언은 대체로 이 그림과 일치한다.



선술집은 큰 솥을 걸고 늘 물을 끓인다. 주인은 우포(牛脯)·어포(魚脯) 등의 여러 가지 마른안주와 너비아니·돼지고기·편육·빈대떡·떡산적·생선·회 등의 진안주를 준비하여 손님을 기다린다. 술꾼이 술을 사 먹는 방식은 술 한 잔에 안주 하나이다. 지금은 술과 안주를 각각 셈하지만, 조선시대 목로주점에서는 술값에 안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술꾼이 목로주점에 들어와 젓가락 통에서 젓가락을 집어 들고 진안주를 집어 석쇠 위에 놓고 목로 앞에 와서 "두 잔 내요"라고 하면, 주인은 '구기'로 술단지에서 손님이 말한 잔 수대로 떠서 옆에 있는 양푼에 붓고 술잔을 늘어놓는다.


주모는 술이 든 양푼을 쟁개비(뚜껑이 없는 냄비같이 생긴 것)의 끓는 물에 넣어 찬 기운을 없앤다. 이것을 냉기를 없앤다 하여 '거냉(去冷)'이라고 한다. 앞의 그림에는 쟁개비가 아니라 무쇠솥이 걸려 있다. 주모는 양푼을 물에 삥삥 돌릴 때와 술잔을 늘어놓을 때, 세마치장단처럼 뚝딱뚝딱 소리를 내서 주객의 흥취를 돋운다고 한다. 술값 계산은 술꾼이 잔을 입에서 뗄 때 중노미가 안주접시를 목로에 놓으면서, "몇 잔 안주요" 하고 말해 잔 수를 계산해 준다. 이것이 선술집에서 술을 파는 방식이다.

 

선술집은 1960년대까지는 있었다. 그야말로 서서 마시는 집이었다. 요즘 선술집은 그냥 앉아서 마신다.

 

 

 

○ 목로주점(木爐酒店)은 구한말

   . 탁자상(길고 좁은 목판)을 차려놓고 술을 파는 집

   . 안주를 늘어놓고 술만 팔았다(안주는 공짜, 무료 제공)

   . 의자가 없어 선채로 마시는 “선술집”

 

○ 색주가(色酒家)는 술과 여자를 함께 파는 집(기방, 요정, 룸쌀롱)

 

 

○ 주식점(酒食店)은 고려 숙종 때(1104)부터 생겼다

   . 화폐 유통 목적으로 장려했다

   . 영남대로~호남大路에 酒店에는 술과 장작 판매

 

○ 향시(鄕市)가 생긴 후로 장시(場市)도 번성

   . 장날, 장터에는 장국밥 집과 술, 음식을 팔았다

 

○ 역참(驛站) 제도 발달에 교통 요충지에는 마을과 酒幕이 생겨

   . 酒幕은 술+숙소도 제공되어 “주막”이라 불렀다

   . 酒店의 여주인은 酒母(주모)

   . 잡일을 도와주는 소년을 중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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