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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국어/고전문학 202

박혁거세 신화

박혁거세 신화 진한(辰韓)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알천에 상류에 모여 군왕을 정하여 받들고자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의 나정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진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서 그곳을 살펴보았더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 일을 깨뜨리자 사내아이가 나오매, 경이롭게 여기면서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온몸에서 빛살을 뿜는 것이었다. 이때 새와 짐승이 더불어 춤추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박혁거세왕이라 이름짓고 위호는 거술한이라고 하였다. 그 즈음에 사람들은 다투어 치하드리며 배필을 구하라고 하였다. 같은 날에 알영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그 왼쪽 겨드랑이로 ..

박연의 피리, 성현(成俔)

박연의 피리 성 현(成俔) 대제학(大提學) 박연(朴堧)은 영동(永同)의 유생이다. 젊었을 때에 향교(鄕校)에서 학업을 닦고 있었는데 이웃에 피리 부는 사람이 있었다. 제학은 독서하는 여가에 겸하여 피리도 배웠다. 온 고을이 그를 피리의 명수(名手)로 추중(推重)하였다. 제학이 서울에 과거보러 왔다가 이원(梨園)의 피리 잘 부는 광대를 보고 피리를 불어 그 교정(校正)을 청하니, 광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소리와 가락이 상스럽고 절주(節奏)에도 맞지 않으며, 옛 버릇이 이미 굳어져서 고치기가 어렵겠습니다.”고 하였다. 제학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더라도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고 하고, 날마다 다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일 후에 듣고는 말하기를, “규범(規範, 법도)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장차 ..

박씨전(朴氏傳)

박씨전(朴氏傳) 작자 미상 줄거리 조선 인조 때 서울 안국방에서 태어난 이시백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문무를 겸전하여 명망이 조야에 떨쳤다. 아버지 이 상공이 주객으로 지내던 박처사의 청혼을 받아들여 시백은 박처사의 딸과 가연을 맺게 된다 그러나 시백은 신부의 용모가 천하의 박색임을 알고 실망하여 박씨를 대면조차 하지 않는다. 박씨는 이 공에게 청하여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여기에서 소일한다. 박씨는 자신의 여러 가지 신이한 일을 드러내 보이지만 시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박씨가 시기가 되어 허물을 벗고, 절대 가인이 되자, 시백은 크게 기뻐하여 박씨의 뜻을 그대로 따른다. 이 때 중국의 가달이 용골대 형제에게 삼만의 병사를 거느리고 조선을 침략하게 하였다. 그러나 박씨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오랑..

박 타는 처녀, 몽고설화

박 타는 처녀 몽고설화 일설에 의하면, 원대(元代)에 몽고에 귀화한 고려 여성들을 통해 유입되었다고 한다. 옛날 어느 처녀가 바느질을 하다가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살던 제비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날지 못하는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실로 다리를 동여매 주었다. 이에 그 제비가 살아났다. 이듬해 그 제비는 강남에서 박씨 하나를 가져다가 뜰에 떨어뜨렸다. 그 처녀는 박씨를 심었더니 가을이 되어 커다란 박이 하나 열렸다. 그 박을 타 보니 온갖 보화가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하여 그 처녀는 매우 큰 부자가 되었다. 이웃집에 사는 심술궂은 처녀가 이 말을 들었다. 그 처녀는 자기 집에 가서 제비를 잡아다가 일부러 다리를 부러뜨려 실로 동여매 주었다. 그 제비는 이듬해 박씨를 갖다가 주었다. 그 처..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平原王) 때에 이름을 온달이라고 하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용모는 괴상했으나 속마음은 밝아 홀어머니를 걸식으로 봉양하며 살고 있었다. 그 때의 평강왕의 딸로서 평강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몹시 울어, 부왕이 자꾸 울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농담을 하곤 하였다. 시집갈 나이 28세가가 되어 부왕이 귀족인 상부 고씨 집에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부왕의 평소 말대로 온달에게 가겠다고 우겼다. 부왕은 노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쫓자 공주는 그 길로 온달을 찾아가 결혼을 했다. 공주는 자기가 궁궐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패물로 의식을 해결하고, 왕실의 병약한 말을 사오게 하여 잘 먹이고 온달에게 무예와 학문을 닦게 하였다. 고구려는 매년 봄 3월 3일에 낙..

바리데기(바리공주), 동해안 무가(東海岸巫歌)

바리데기(바리공주) 동해안 무가(東海岸巫歌) 줄거리 요약 불라국에 오귀 대왕과 길대 부인이 살고 있었다. 부부는 딸만 여섯을 낳았다. 그러던 차에 신령님께 치성(致誠)을 드려 아이를 잉태하지만, 낳고 보니 또 딸이었다. 대왕은 실망하여 아이를 내다 버리라고 명한다. 길대 부인이 그 이름을 ‘바리데기’ 라고 짓고 산에 갖다 버리니, 학이 나타나 채 간다. 세월이 흐른 뒤, 오귀 대왕은 큰 병에 걸렸는데 백약이 무효였다. 병을 고치려면 서천 서역국에 가서 약수(藥水)를 구해 와야 한다는데, 갈 사람이 없었다. 그때 부인이 꿈에 계시를 받고 산으로 가서 바리데기를 찾는다. 신령의 도움으로 무사히 지내고 있던 바리데기는 부모와 만나자마자 자청해서 약수를 구하러 길을 떠난다. 바리데기가 우여곡절을 다 겪으며 서천..

고구려 미천왕 설화

고구려 미천왕 설화 고구려의 봉산왕(烽上王)은 서천왕(西川王)의 태자로, 즉위한 이듬해, 아우 졸고가 딴 마음이 있다고 하여 죽였다. 졸고의 아들이며 왕손인 을불(乙弗, 미천왕의 아명)은 포악한 왕을 피해 신분을 감추고, 남의 머슴살이를 하며 주인을 위해 개구리가 울지 못하도록 밤새도록 연못에 돌을 던지기도 하고, 소금장수를 하다가 마음씨가 고약한 노파가 그의 소금자루에 몰래 자기 신발을 넣어 태형을 받기도 한다. 왕은 학정을 하였고, 재상 창조리(倉助利)는 여러 차례 왕의 잘못을 간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그 후 창조리를 비롯하여 왕의 학정에 불만을 품은 신하들이 왕이 후산(侯山)에 사냥을 가자, 그곳에 따라가 왕을 폐위하였다. 을불은 그들의 옹립을 받아 왕위에 올라 고구려의 국력을 크게 신장 시켰..

문전신(門前神), 서사무가, 재생설화(再生說話)

문전신(門前神) 이 이야기는 재생설화(再生說話)의 일종으로 죽은 어머니를 환생꽃을 구하여 살리는 이야기이다. 이런 이야기는 서사무가(敍事巫歌)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남선비가 식구는 많고 흉년은 들어 오동국으로 쌀을 사러 갔는데 삼 년을 돌아오지 아니하니 그 부인이 남편을 찾아 오동국으로 간다. 그리하여 남편은 만났으나 노일저대귀의 딸을 첩을 삼아 살며 눈이 어두워 세상을 분별치 못하고 지내는 것을 안다. 그러나 노일저대귀는 남선비의 본부인이 온 것을 알고 샘터에 밀어 넣어 죽이고 본부인의 옷을 입고 남선비의 본집으로 간다. 한편, 남선비의 아들 칠 형제는 어머니가 자기의 친어머니가 아닌 것을 알고 이상히 생각한다. 노일저대귀는 아들 칠형제를 죽이려고 거짓으로 병들 체하고 남편보고 점을 쳐보라고 하여 ..

목동문답가(牧童問答歌), 임유후

목동문답가(牧童問答歌) 임유후(?) 녹양 방초안에 소 먹이는 아이들아 인간 영락을 아는다 모르는다 인생 벽년이 풀끝에 이슬이라 삼만 육천일을 다 살아도 초초커든 수단이 명이어니 사생을 결할소냐 생애는 유한하되 사일을 무궁하다 역려 건곤에 부유같이 나왔다가 공명도 못 이루고 초목같이 썩어지면 공산 백골이 그 아니 느껴우냐 시서 백가를 자자히 외워내어 공맹 안증을 일마다 법받으며 직설을 기필하고 요순을 비겨내어 강구연월에 태평가를 불러 두고 사해 팔황을 수성에 올리기는 이음양 순사시 재상의 사업이요 백만 군병을 지휘중에 넣어 두고 풍운을 부쳐 내어 우주를 흔들기와 장검을 비끼 잡아 만적을 당하기와 자수금인을 허리아래 비끼 차고 황룡부에 통음하고 능연각에 회상하니 위권이 혁혁하여 오정식에 누리기는 장수의 모략..

면앙정가(俛仰亭歌), 송순

면앙정가(俛仰亭歌) 송 순 작품 해제 이 작품은 작자가 41세 때 향리(鄕里)인 전남 담양의 제월봉 아래 면앙정(俛仰亭)이란 정자를 짓고,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노니는 자신의 풍류 생활을 노래한 서정 가사이다. 자연을 즐기는 서정적 자아의 풍류 생활이 물씬 나타나 있는 작품으로 내용, 사상, 표현 면에서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과 ‘관동별곡’을 잇는 교량적 역할을 하고 있다. 면앙정(俛仰亭)이 있는 제월봉(霽月峰)의 형세와 면앙정의 모습을 그린 다음, 그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근경(近景)에서 원경(遠景)으로 묘사하고 춘하추동(春夏秋冬) 사시(四時)의 계절 변화에 따라 짜임새 있게 묘사하였다. 그러면서 이러한 절경(絶景)에서 묻혀 노니는 지은이의 호방한 정회(情懷)를 노래하였다. 无等山(무..

매품팔이(代杖)

매품팔이(代杖) 작자 미상 안주(安州)의 한 백성이 볼기 맞는 매품을 팔아 살아갔다. 외군(外郡) 아전이 병영(兵營)에서 곤장 7대를 맞게 되매 돈 5꿰미를 걸고 대신 매맞을 사람을 구하였더니 그 매품팔이가 선뜻 나섰다. 집장(執杖) 사령(使令)은 그 자가 번번히 나타나는 것이 얄미워 곤장을 혹독하게 내리쳤다. 매품팔이는 곤장이 갑자기 사나워질 것을 생각지 못하였으므로 우선 참아 보았으나, 두 번째 매가 떨어지매 도저히 견뎌 낼 재간이 없어서 얼른 다섯 손가락을 꼽아 보였다. 5꿰미의 돈을 뒤로 바치겠다는 뜻이었다. 집장 사령은 못 본 척하고 더욱 심하게 내리쳤다. 곤장 7대가 끝나기 전에 이러다가 자기가 죽게 될 것임을 깨달은 매품팔이는 재빨리 다섯 손가락을 다시 펴 보였다. 뒤로 먹이는 돈을 배로 올..

망부석(望夫石) 설화

망부석(望夫石) 설화 신라 초기 내물왕이 즉위한지 36년경인(庚寅, 390 A.D)에 일본이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앞으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표로 왕자 한 사람을 보내어 달라고 하므로, 셋째 아들 미해(美海)를 보냈더니 돌려보내지 않았다. 또 눌지왕 때에 고구려가 화친한다는 이름 아래 왕자 보해(寶海)를 보내 달라고 하므로 부득이 하여 눈물을 머금고 보냈더니, 역시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에 눌지왕은 아우 둘을 남의 나라에 두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이를 안 박제상은 고구려로 가서 보해를 구해냈다. 다시 일본으로 왕의 동생 미사흔(未斯欣)을 데리러 간 박제상(朴堤上)이 왕자를 구출했지만 자신은 돌아오지 못했다. 왜왕에게 환심을 산 후 미해를 신라로 귀국시킨 박제상은 붙잡혀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이..

만복사저포기, 김시습

만복사저포기 김시습 내용 요약 남원에 사는 노총각 양생(梁生)은 어느 날 만복사의 불당에 찾아가서 부처님께 저포 놀이를 청했다. 그가 지면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릴 것이요, 부처님이 지면 그에게 아름다운 배필을 중매해 달라고 부탁하는 내기였다. 서생은 두 번 저포를 던져 이기게 되어, 불좌 밑에 숨어서 배필이 될 여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문득 아름다운 아가씨가 나타나 부처님 앞에 자신의 외로운 신세를 하소연하면서 좋은 배필을 점지해 달라고 기원하였다. 이를 본 서생이 그 여인 앞으로 뛰어나가 회포를 말하니 두 사람은 정이 통해져 하룻밤을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실은 이 여인은 인간이 아니라 왜구가 침범한 난리통에 죽은 처녀의 환신이었다. 이튿날 여인은 서생에게 자기가 사는 동네로 가기를 권했..

만보, 晩步(늦을 녘에 거닐다), 이황(李滉)

만보, 晩步(늦을 녘에 거닐다) 이 황(李滉) 苦忘亂抽書(고망난추서) 잊음 많아 이 책 저 책 뽑아 놓고서 散漫還復整(산만환복정) 흩어진 걸 도로 다 정리하자니, 曜靈忽西頹(요령홀서퇴) 해가 문득 서으로 기울어지고, 江光搖林影(강광요림영) 가람엔 숲 그림자 흔들리누나. 扶筇下中庭(부공하중정) 막대 짚고 뜨락으로 내려를 가서 嬌首望雲嶺(교수망운령) 고개 들고 구름재를 바라다보니, 漠漠炊烟生(막막취연생) 아득아득 밥 짓는 연기가 일고, 蕭蕭原野冷(소소원야랭) 으스스 산과 벌은 싸늘하구나. 田家近秋穫(전가근추확) 농삿집 가을걷이 가까워지니, 喜色動臼井(희색동구정) 방앗간 우물터에 기쁜 빛 돌아. 鴉還天機熟(아환천기숙) 갈가마귀 날아드니 절기 익었고, 鷺立風標迵(노입풍표동) 해오라기 우뚝 서니 모습 훤칠해. 我..

마장전, 박지원

마 장 전 박지원 줄거리 송욱, 조탑타, 장덕홍 등 세 사람이 광통교에 모여 친구를 사귀는 것에 대해 서로 이야기 하게 되었다. 조탑타와 장덕홍이 교도에 대해 이야기하자 송욱은 그것이 교태와 교면은 될 지언정 교도는 아니라고 지적하면서 군자의 교우에 세 가지가 있고 그 처리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하며, 자신은 그 가운데 한 가지도 못하기에 나이 삼십이 되도록 친구가 없다고 하였다. 송욱의 이야기를 장덕홍은 알아듣자 삼교오수를 일러 주었다. 그러나 조탑타가 이해하지 못하므로 장덕홍이 자세히 설명해 주며 삼십여 년을 국내를 두루 돌아 다녔으나 친구가 없는 것은 화와 원망을 풀어주는데는 우는 것이 신속하나 자신은 울지도 못하고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덕홍의 이러한 이야기를 듣..

두시언해(杜詩諺解) 해제

두시언해(杜詩諺解) 해제 훈민정음의 창제는 모든 문화 사업에 급진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그 중에서도 인쇄술의 발달로 인한 번역 사업은 크게 활기를 띠었다. 집현전과 언문청을 중심으로 하여 운서 언해(韻書諺解),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중심으로 하여 불경 언해(佛經諺解), 홍문관을 중심으로 하여 문학서(文學書)를 활발히 언해하였다. 또, 세종․세조 때에 시작되었던 경서(經書)의 언해는 중종 때에 이르러 크게 활기를 띠었다. 두시언해(杜詩諺解) 당(唐)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 712 ~ 770)의 시를 언해한 것으로 초간본(初刊本)은 15세기에, 중간본(重刊本)은 17세기에 나와 15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는 국어의 변천을 고찰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 원작자: 당나라 현종 때 시인 두보(杜甫; 자는..

두보(杜甫: 712-770)

두보(杜甫: 712-770) 중국 성당시대(盛唐時代)의 시인. 자 자미(子美). 호 소릉(少陵).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성(詩聖)이라 불렸으며, 또 이백(李白)과 병칭하여 이두(李杜)라고 일컫는다. 본적은 후베이성[湖北省]의 샹양[襄陽]이지만, 허난성[河南省]의 궁현[鞏縣]에서 태어났다. 먼 조상은 진대(晉代)의 위인 두예(杜預)이고, 조부는 초당기(初唐期)의 시인 두심언(杜審言)이다. 소년시절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고, 각지를 방랑하여 이백․고적(高適) 등과 알게 되었으며, 후에 장안(長安)으로 나왔으나 여전히 불우하였다. 44세에 안녹산(安祿山)의 난이 일어나 적군에게 포로가 되어 장안에 연금된 지 1년 만에 탈출, 새로 즉위한 황제 숙종(肅宗)의 행재소(行在所)에 달려갔으..

만언사(萬言詞), 안조환(安肇煥)

만언사(萬言詞) 안조환(安肇煥) 작품 해제 조선 정조 때 대전별감(大殿別監)이던 안조환(安肇煥)이 지은 유배 가사의 하나로, , 이라고도 한다. 작자가 주색에 빠져서 국고를 횡령하여 추자도(楸子島)에 유배되어 굶주림과 추위, 집주인의 학대와 조롱 등에 시달리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선처를 바라는 내용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노래가 멀리 한양에 전하여져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이 글을 읽는 궁녀들의 눈물을 자아내었다한다. 조위(曺偉)의 , 김진형(金鎭衡)의 등과 아울러 유배문학(流配文學)에 속하는 가사이나, 가사의 성격은 다르다. 대부분의 유배가사는 고위관리를 지내다 정치적인 이유로 유배를 당한 고위관료의 울분의 심정이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작자는 하급벼슬아치로서 자신의 파렴치한 행위..

두견새(杜鵑) 설화

두견새(杜鵑) 설화 촉(蜀: 지금의 四川省) 나라에 이름이 두우(杜宇)요, 제호(帝號)를 망제(望帝)라고 하는 왕이 있었다. 어는 말 망제가 문산(汶山)이라는 산밑을 흐르는 강가에 와 보니, 물에 빠져 죽은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오더니 망제 앞에서 눈을 뜨고 살아났다. 망제는 이상히 생각하고 그를 데리고 돌아와 물으니 “저는 형주(刑州) 땅에 사는 별령(鱉靈)이라고 하는 사람인데, 강에 나왔다가 잘못해서 물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해서 흐르는 물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라는 것이다. 망제는,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늘이 내게 어진 사람을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하여 별령에게 집을 주고 장가를 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정승을 삼아 나라 일을 맡기었다. 망제는 나이도 어리고 마음도 약한..

동명일기(東溟日記), 연안 김씨

동명일기(東溟日記) 연안 김씨 행여 일출(日出)을 못 볼까 노심초사(勞心焦思)하여, 새도록 자지 못하고, 가끔 영재를 불러 사공다려 물으라 하니, “내일은 일출을 쾌히 보시리라 한다.” 하되, 마음에 미쁘지 아니하여 초조하더니, 먼 데 닭이 울며 연(連)하여 자초니, 기생과 비복(婢僕)을 혼동하여 어서 일어나라 하니, 밖에 급창(及唱)이 와, “관청 감관(官廳監官)이 다 아직 너모 일찍 하니 못 떠나시리라 한다.” 하되 곧이 듣고, 발발이 재촉하여, 떡국을 쑤었으되 아니 먹고, 바삐 귀경대(龜景臺)에 오르니 달빛이 사면에 조요(照耀)하니, 바다이 어제 밤도곤 희기 더하고, 광풍이 대작(大作)하여 사람의 뼈를 사못고, 물결치는 소래 산악이 움직이며, 별빛이 말곳말곳하여 동편에 차례로 있어 새기는 멀었고, ..

동명왕편(東明王篇), 이규보(李奎報)

동명왕편(東明王篇) 이규보(李奎報) (전략) 王知慕潄妃(왕지모수비) 왕이 해모수의 왕비인 것을 알고 仍以別室寘(잉이별실치) 이에 별궁에 두었다. 懷日生先蒙(회일생선몽) 해를 품고 주몽을 낳았으니 是歲歲在癸(시세세재계) 이 해가 계해년 이었다. 骨表諒最奇(골표량최기) 골상이 참으로 기이하고 啼聲亦甚偉(제성역심위) 우는 소리가 또한 심히 컸다. 初生卵如升(초생난여승) 처음에 되만한 알을 낳으니 觀者皆驚悸(관자개경계) 보는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王以爲不祥(왕이위불상)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比豈人之類(비기인지류)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고 置之馬牧中(치지마목중) 마구간 속에 두었더니 群馬皆不履(군마개불리) 여러 말들이 모두 밟지 않고 葉之深山中(엽지심산중) 깊은 산 속에 버렸더니 百獸皆擁衛(백수개옹위)..

동명왕 신화(설화)

동명왕(東明王) 국사인 고려 본기(本紀)에 말했다. 시조 동명성제의 성은 고씨요 휘(諱)는 주몽이니 이보다 앞서 북부여와 해부루가 이미 동부여로 피해 가고 부루가 죽자 금와(金蛙)가 왕위를 이었다. 이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만나 물으니, 대답하여, “나는 본시 하백(河伯)의 딸로 이름은 유화(柳花)인데 여러 아우들과 나와 놀고 있을 때에 한 남자가 나타나 자기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라 하고 나를 웅신산(熊神山) 밑 압록강가의 집 속으로 유인하여 남몰래 정을 통하고 가버린 뒤 돌아오지 않으므로---단군기에는 단군이 서하의 하백의 딸과 친하여 아들을 낳아 부루라 이름하였다 하였는데 지금 이 기록을 상고해 보면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정을 통해서 후에 주몽을 낳았다고 했다...

독서유감(讀書有感), 서경덕

독서유감(讀書有感) 서경덕 讀書當日志經綸(독서당일지경륜) 歲暮還甘顔氏貧(세모환감안씨빈) 富貴有爭難下手(부귀유쟁난하수) 林泉無禁可安身(임천무금가안신) 採山釣水堪充腹(채산조수감충복) 月吟風足暢神(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闊(학도불의지쾌활) 免敎虛作百年人(면교허작백년인) ◈ 當日(당일) : 그 당시 ◈ 志(지) : 뜻을 두다 ◈ 歲暮(세모) : 늙은 후. 만년에 ◈ 還(환) : 도리어. 오히려 ◈ 顔氏(안씨) : 공자의 제자였던 안연을 말함 ◈ 有爭(유쟁) : 다툼이 있다. ◈ 下手(하수) : 손을 대다. ◈ 林泉(임천) : 산수자연. 강호의 의미. ◈ 採山(채산) : 산나물을 캠 ◈ 釣水(조수) : 물고기를 낚음. 낚시질. ◈ 充腹(충복) : 배를 채우기에 충분함 ◈ 月吟風(월음풍) : 풍월을 읊음. 시를 ..

독락팔곡(獨樂八曲), 권호문

독락팔곡(獨樂八曲) 권호문 1장 太平聖代(태평성대) 田野逸民(전야일민) 再唱(재창) 耕雲麓(경운록) 釣烟江(조연강)이 이밧긔 일이업다. 窮通(궁통)이 在天(재천)ᄒᆞ니 貧賤(빈천)을 시름ᄒᆞ랴. 玉堂(옥당) 金馬(금마)ᄂᆞᆫ 내의願(원)이 아니로다. 泉石(천석)이 壽域( 수역)이오 草屋(초옥)이 春臺(춘대)라. 於斯臥(어사와) 於斯眠(어사면) 俯仰宇宙(부앙우주) 流觀(유관) 品物(품물)ᄒᆞ야, 居居然(거거연) 浩浩然(호호연) 開襟獨酌(개금독작) 岸幘長嘯(안책장소) 景(경) 긔엇다 ᄒᆞ니잇고. 1장 태평스럽고 성스러운 시대에, 시골에 은거하는 절행이 뛰어난 선비가, 구름 덮인 산기슭에 밭이랑을 갈고, 내 낀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느니, 이밖에는 일이 없도다. 빈궁과 영달이 하늘에 달렸으니, 가난함과 천함을 ..

독락당(獨樂堂), 박인로

독락당(獨樂堂) 박인로 자욱한 명승지에 독락당이 소쇄함을 들은지 오래로되 이 몸이 무부로서 해변사가 공극거늘 일편단심 분의를 못내하여 금창철마로 여가없이 분주타가 중심 경양이 백수에 더욱 깊어 죽장망혜로 오늘사 찾아오니 봉만은 수려하여 무이산이 되어있고 유수는 반회하여 후이천이 되었나다 이러한 명구에 임자 여이 없돗던고 일쳔년 신라와 오백재 고려에 현인 군자들이 많이도 지냈마는 천간지비하여 야선생께 기치도다 물각유주이여든 다툴 이 있을소냐 정라를 헤혀 들어 독락당을 열어 내니 유한 경치는 견할 데 뇌야 없네 천간 수죽은 벽계 좇아 둘러 있고 만권서책은 사벽에 쌓였으니 안증이 재좌하고 유하는 재우할 듯 상우천고하며 음영을 일을 삼아 한중정리에 잠사자득 하여 혼자 즐겨 하시었다 독락 이 이름 칭정한 줄 긔 ..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희명

도천수관음가(禱千手觀音歌) 희명 膝盻古召尸(슬혜고소시) 二尸掌音手乎支內良(이시장음수호지내양) 千手觀音叱前良中(천수관음질전양중) 祈以支白屋尸置內乎多(기이지백옥시치내호다) 千隱手(천은수) 叱千隱目盻(질천은목혜) 一等下叱放一等盻除惡支(일등하질방일등혜제악지) 二于萬隱吾羅(이우만은오나) 一等沙隱謝以古只內乎叱等賜(일등사은사이고지내호질등사) 阿邪也(아사야) 吾良遣知支賜尸等焉(오양견지지사시등언) 放冬矣用屋尸慈悲也根古(방동의용옥시자비야근고) 무루플 고조며 둘솑바당 모호누아 천수관음ㅅ 전아ᄒᆡ 비ᄉᆞᆯᄫᅳᆯ 두누오다 즈믄손ㅅ 즈믄눈흘 한ᄃᆞᆫᄒᆞᆯ 노ᄒᆞ ᄒᆞᄃᆞᆫᄒᆞᆯ 더ᄋᆞᆸ디 둘 업는 내라 ᄒᆞᄃᆞᆫᅀᅡ 그ᅀᅳᅀᅵ 고티누옷다라 아으으 나애 기티샬ᄃᆞᆫ 노ᄐᆡ ᄡᅮᆯ 자비여 큰고 무릎을 꿇으며 두 손바닥을 모아 천수관..

도중(途中), 김시습(金時習)

도 중(途中) 김시습(金時習) 貊國初飛雪(맥국초비설) 春城木葉疏(춘성목엽소) 秋深村有酒(추심촌유주) 客久食無魚(객구식무어) 山遠天垂野(산원천수야) 江遙地接虛(강요지접허) 孤鴻落日外(고홍낙일외) 征馬政躊躇(정마정주저) 맥의 나라 이 땅에 첫눈이 날리니, 춘성에 나뭇잎이 듬성해지네. 가을 깊어 마을에 술이 있는데, 객창에 오랫동안 고기 맛을 못 보겠네. 산이 멀어 하늘은 들에 드리웠고, 강물 아득해 대지는 허공에 붙었네. 외로운 기러기 지는 해 밖으로 날아가니, 나그네 발걸음 가는 길 머뭇거리네. 민병수 옮김 해설 이 작품은 늦가을의 산촌 풍경과 함께 유랑의 길을 떠도는 시인의 감회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전통적인 한시의 형태인 5언 율시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시적 감흥을 돋구는 부분은 후반부이..

도이장가, 예종

도이장가 예종 主乙(주을) 完乎白乎(완호백호) 心聞(심문) 際天乙(제천을) 及昆(급곤) 魂是(혼시) 去賜矣中(거사의중) 三烏賜敎(삼오사교) 職麻(직마) 又欲(우욕) 望彌(망미) 阿里刺(아리자) 及彼可(급피가) 二(이) 功臣良(공신량) 久乃(구내) 直隱(직은) 跡烏隱(적오은) 現乎賜丁(현호사정) (양주동 해석) 니믈 오ᄋᆞᆯ오ᄉᆞᆯᄫᅳᆫ ᄆᆞᅀᆞᄆᆞᆫ ᄀᆞᇫ하ᄂᆞᆯ 밋곤 넉시 가샤ᄃᆡ 사ᄆᆞ샨 벼슬마 ᄯᅩᄒᆞ져 ᄇᆞ라며 아리라 그ᄢᅴ 두功臣여 오라나 고ᄃᆞᆫ 자ᄎᆡᄂᆞᆫ 나토샨뎌 님의 목숨을 온전하게 하신 마음은 하늘 가에 미치고 넋은 가셨지만 내려주신 벼슬은 또 대단하구나 바라보면 알리라 그 때의 두 공신이여 오래 되었으나 (거룩한) 자취는 나타나시도다 핵심정리 * 주제: 두 장군의 충절 정신 애도 * ..

도산십이곡 발(陶山十二曲跋), 이 황

도산십이곡 발(陶山十二曲跋) 이 황 이 ‘도산십이곡'은 도산 노인(陶山老人)이 지은 것이다. 노인이 이 시조를 지은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 동방의 가곡은 대체로 음와(음탕)하여 족히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저 ‘한림별곡'과 같은 류는 문인의 구기(口氣)에서 나왔지만 긍호(矜豪)와 방탕에다 설만(褻慢)과 희압(戱狎)을 겸하여 더욱이 군자로서 숭상할 바 못 되고, 다만 근세에 이별(李鼈)이 지은 ‘육가(六歌)'란 것이 있어서 세상에 많이들 전한다. 오히려 저것(육가)이 이것(한림별곡)보다 나을 듯하나, 역시 그 중에는 완세 불공(玩世不恭)의 뜻이 있고 온유 돈후 (溫柔敦厚)의 실(實)이 적은 것이 애석한 일이다. ▶ ‘도산십이곡'을 짓게 된 이유 노인이 본디 음률을 잘 모르기는 하나, 오히려 세속적인 ..

도산별곡(陶山別曲), 조성신(趙星臣)

도산별곡(陶山別曲) 조성신(趙星臣) 태백산 나린 용이 영지산이 높으셔라 황지로 솟은 물이 낙천이 맑으셔라 퇴계수 돌아 들어 온계천 올라오니 노송정 옛 집터에 대현이 나시거다 일구 도산이요 그 곁에 명승지라 어호다 우리 선생 이 곳에 장수하와 당년의 장루소요 후세의 조두소라 연말 후학이 인읍에 생장하여 문정은 못 미쳐도 강산은 지척이라 유서를 통독하고 고풍을 상상하여 백리 연하를 지점함이 오래더니 임자년 초삼월에 성상의 은전으로 예관의 명을 받아 묘하에 치제하고 다사를 함께 모아 별과를 보이시니 어와 성은이야 가지록 망극하다 교남 칠십주에 뉘 아리 흥기하랴 서동을 앞세우고 장포의 뒤를 따라 형례를 참례하고 시권을 마친 후에 농운정사 돌아 들어 암서헌 들어가니 문전의 살평상은 장석이 의의하고 궤중에 청려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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