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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 2020년, 제2의 베트남 전쟁, 세대의 전쟁, 실패한 전쟁, 미 최장기 전쟁, 빈라덴, 탈레반, 미국 실패 이유

Jobs9 2021. 4. 1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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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제1차 미국-아프간 전쟁: 2001년 10월 7일 ~ 2014년 12월 28일
제2차 미국-아프간 전쟁: 2015년 1월 1일 ~ 2020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1차 전쟁의 경우 9.11 테러 직후 벌어진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 테러와의 전쟁이란 원대한 계획의 첫 단계로 펼쳐진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의 일부이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이은 아프가니스탄 침략군이 실패한 전쟁이기도 하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개전 당시의 병/부사관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장교단도 물갈이가 되면서 “세대의 전쟁”(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는 중이다.




'전쟁의 수렁'에 빠진 미국

탈레반은 이후 아프간 곳곳에서 정부군 및 나토군을 공격에 나섰다.

탈레반 최고지도자 물라 무함마드 오마르는 도피에 성공했고, 탈레반 대원들은 산악지대에 은신해 연합군을 상대로 게릴라전과 테러를 계속하면서 세력 재건을 시도했다.

대도시나 주요 거점은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이 차지했지만, 그 외 지역에서는 여전히 탈레반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했다.

그러다가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이 2009년 재선에 성공하면서 평화협상 구상에 대한 운을 띄웠다.

계속된 전쟁 속에서도 어느 한쪽이 분명한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탈레반과 협상을 해야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적극적으로 화답한 이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2009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내 아프간전을 종료하기를 바랐다.

그는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것을 목표로 2010년 최대 10만명에 이르렀던 주둔군을 줄이고 치안 유지 책임을 아프간 군·경에 이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화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아프간 정부는 "정부와 탈레반이 협상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고, 탈레반은 "미국 꼭두각시인 아프간 정부와 머리를 맞댈 수 없다"고 맞서면서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미국-탈레반 간 포로-죄수 맞교환, 탈레반의 대외창구 노릇을 하는 카타르 도하 정치사무소 개설(2013년) 등 간간이 성과가 있었지만, 고비 때마다 이견이 불거지면서 협상은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어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이 내전 14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회담을 열었지만, 곧바로 동력을 상실했다.

탈레반이 벌인 대형 테러와 탈레반 최고 지도자 물라 무하마르 오마르의 사망 등이 겹치면서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5년 10월 자신의 임기 내 아프간 주둔 미군을 완전히 철수하겠다는 계획을 철회했다.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직접 협상 시작

그러다가 아프간 정부가 2016년 9월 탈레반 다음으로 큰 반군세력인 '헤즈브-에-이슬라미 아프가니스탄'(HIA)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해 말 탈레반 내부에서도 무차별 테러를 중지하고 정부와의 평화협상에 참여하자는 목소리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적극적인 아프간 군사전략을 발표했다.

주둔 미군 철수 등에 대한 시한을 제시하는 대신 테러 세력과 싸움에서 승리를 내세웠다.

이후 아프간 주둔 병력은 늘어났지만, 미국에 전황이 유리하면 탈레반과 직접 협상도 가능하다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러다가 지난해 7월 앨리스 웰스 미국 국무부 남·중앙아시아 수석 부차관보가 카타르에서 극비리에 탈레반 측과 만났다.

양측 고위급 대표단이 아프간 정부를 제외한 채 직접 협상 테이블에 나선 것은 2001년 후 사실상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극단적인 테러를 일삼던 탈레반 측 분위기도 과거와 달라졌다. 민간인을 겨냥한 '자살폭탄 테러'를 중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프간 정부도 지난해 2월 탈레반에 합법조직으로 인정할 테니 전쟁을 중단하고 평화협상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하는 등 화해의 손짓을 했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아프간 정부군과 탈레반이 전례 없이 사흘간 휴전하기도 했다.


9차 협상 끝에 평화협정 합의…18년간 천문학적 비용과 엄청난 사상자 발생

미국과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은 올해 들어 탄력이 붙었다.

지난 1월 양측은 아프간 내 국제 테러조직 불허 등을 조건으로 현지 외국 주둔군을 모두 철수하는 내용의 평화협정 골격에 합의했다.

하지만 종전선언, 철군 조건과 시기, 탈레반-아프간 정부 간 직접 대화 등 세부 사항에서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서 이후 협상은 다시 지지부진해졌다.

미국은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 1만4천명을 3∼5년간 단계적으로 철수하고 일부를 남기기를 원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1년 이내 외국군 전면 철수·철군 스케줄 공표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초 8차 협상을 거치면서 급물살을 탔다.

잘메이 할릴자드 아프간 평화협상 관련 미국 특사는 지난달 5일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훌륭한 진전을 봤다"며 잠정 합의안에는 조건에 따라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군하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후 양측은 지난달 22일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9차 협상에 돌입했고 마침내 역사적인 평화협정 초안에 합의했다.

할릴자드 특사는 2일 미국이 아프간에서 135일 이내에 약 5천명의 병력을 철수하고 5개의 기지를 폐쇄하는 내용이 포함된 평화협정 초안을 탈레반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대신 탈레반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무장단체가 미국이나 그 동맹에 대한 공격을 모의하는 데 아프간이 이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국은 18년간 싸운 탈레반에 아프간을 넘기고 떠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아프간전에 투입한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과 전쟁이 남긴 수많은 사상자도 미국에는 부담이다.

BBC 뉴스는 미국 국방부의 통계를 인용해 미국이 지난 3월까지 아프간 전쟁에 투입한 군사 비용은 7천600억달러(약 924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미군은 2천300여명이 사망했고 약 2만500명이 다쳤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실패한 이유

미군과 ISAF는 벌어지는 전투마다 압도적인 교환비를 자랑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탈레반 수백명이 사상당하면서도 미군 병력의 손실이 전무했던 전투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전쟁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었다

몰살의 불가능

또한 고대-중세 전쟁과 다르게 현대 전쟁에선 적들을 잡고 몰살을 시키기가 어렵다. 물론 비행기나 미사일로 섬멸전을 할 때도 있으나 사로잡힌 적병들은 수뇌들만 사형시키고 잔병들은 가둬 교화시키려고 하는데, 탈출하거나 다시 탈레반에 가입하거나 일반 시민을 꾀어낸다. 미국 입장에선 점령지에서 인종 학살을 하게 되면 국가 이미지에 타격도 있으며 아직 미국에겐 학살 정도의 명분이 없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오랜 기간동안 내전을 치렀고, 1996년부터는 시대착오적인 탈레반이 국가를 중세로 되돌렸고, 2001년부터는 또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실패국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부족갈등, ISAF의 병력부족으로 인한 치안의 악화, 탈레반의 과격화, 하미드 카르자이 정부의 부패와 무능, 미군의 삽질과 수많은 오인사격/폭격, 경제적으로는 오랜 전쟁으로 개판이 된 민생경제, 마약재배, 관료들의 부패 등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탈레반 소탕에 실패한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엄청난 부패이다. 그 부패 수준이 어느정도냐면 아프가니스탄이 아프간인 수백만명이 먹고살 정도의 엄청난 자금을 원조 받았는데도 휘하 관료들이 원조자금의 태반을 자기돈인 마냥 횡령하기 급급하는 막장짓을 일삼다보니 전후 복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심지어 아프간 관료들이 뒷돈 받아쳐먹기에 급급하다보니 테러범들이 테러하든 말든간에 별 상관 안해서 탈레반이 살아났다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다. 원조자금이 전후 복구 및 산업발전, 인프라 확충 등에 제대로 쓰였다면 아프가니스탄은 최소한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어도 이상할것이 없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최빈국으로 머물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이들의 만행때문이다. 말 그대로 탈레반보다 상대적으로 나을뿐 이들도 막장이라는 얘기이다. 


부족들의 탈레반 지지: 결국 남을 세력, 탈레반

부족 간에 강약은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원래가 이슬람 원리주의자이고, 적어도 탈레반을 호의적으로도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탈레반이 폭정을 저지를때는 과부들이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고 남자라도 수염을 깎거나 할 경우에는 최대 사형에 처하는 막장짓거리때문에 탈레반에 대한 민심이반이 일어났지만 카르자이 정권이 각종 부패스캔들로 악명을 떨치면서 탈레반의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좋아졌다고 하는것이 옳을것이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자 미군에 대한 지지세가 감소하고 있다. 미군은 언젠가는(?) 떠나지만, 탈레반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중들은 더러워도 탈레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에 서술하듯이 초반 미군이 압도적으로 탈레반 몰아낼 당시 민중들이 좋아하고 죽은 탈레반 시체를 매달고 모욕을 가하며 고소해했던 걸 생각하면 아프간 민중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하는 건 아니다. 이건 이라크 전쟁 때도 똑같았다. 여기서도 미군을 환영하고 후세인 동상을 부수고 그림을 태우며 사람들은 속시원해했지만 길어지는 전쟁과 덩달아 당하는 테러 피해, 게다가 미군의 행패 및 갈등으로 인하여 이라크 전쟁 문서에서도 나오듯이 반미적으로 돌아섰듯이 아프가니스탄도 다를 게 없었다. 

탈레반이 집권하던 시절 폭정은 상상을 넘어섰다. 당장 탈레반 문서만 봐도 극단주의자들이나 지지했지, 탈레반 정권 시기 대다수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더 지지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탈레반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웃어도 처벌하던 놈들이었고 대중문화 자체를 싸그리 금지하며, 면도해도 죽이고(!) 연날리기까지 알라의 하늘을 모독한다며 연날리던 아이들을 구타해 죽이며 축구를 금지해서 거리에서 축구공을 찼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패죽였으며 축구경기장을 사형장으로 쓰던 놈들이었다.

아프간 인들도 미군이 쳐들어와 탈레반을 일시적으로 몰아낼 당시 미군을 환영하고 보란듯이 그동안 꼭꼭 숨겨오던 영화나 음반들을 꺼내 팔고 속시원해하던 반응을 보였다. 즉 주민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 성향이 강하다고 해도, 미국이 최소한 처음처럼 아프가니스탄에 총력을 다하여 탈레반을 분쇄했더라면 역사는 확실히 달라졌으리라 보는 분석이 많다. 적어도 미군과 갈등으로 일부 테러라든지 충돌을 피할 수 없어도 탈레반이 박살난 상황에서 '지금이 낫다, 적어도 미군이 행패나 피해가 있을지언정 탈레반보다 엄청나게 낫다'는 인식이 많을 가능성이 높았다. 같은 시기에 이라크 전쟁을 벌이며서 탈레반 부활을 시킨 미국이 이 부분에서 책임을 피하긴 어렵다. 

 

포기도 불가능: 핵관련 광물자원으로 인한 아프가니스탄의 가치

이렇게 갈 길이 멀어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대충 손을 떼고 나갈 수 없다. 이라크와는 달리 아프간 전쟁은 전쟁의 명분이 서있고 아프가니스탄이 우라늄을 비롯한 막대한 광물자원을 가득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웃 파키스탄이 핵 보유국이라는 점까지 생각하면 탈레반이 승리할 경우, 인접한 파키스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48] 만일 핵 무기의 통제권이 탈레반에 넘어간다면(…). 따라서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프가니스탄을 통제 하에 두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바마 정부 당시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미군의 Covert Operation(비밀작전)의 횟수가 크게 증가했던 것도 정치적 생명을 걸고 아프간전을 끝내려고 하는 미국 정부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태스크 포스 373의 존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전쟁 장기화로 인한 일선장병의 한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선 장병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심각해지고 있으며 별의별 인간들이 병력 부족으로 군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쟁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전쟁터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장병들이 본토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건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장병들도 마찬가지. 미군 실전부대는 1년간 순환근무를 하는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웬만한 병사는 서너 번씩 이라크나 아프간을 다녀오면서 지옥을 경험하다보니 맛이 간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Pakistani perfidy, Afghan avarice

Officials quoted in the Washington Post investigation repeatedly blame Pakistan and its partners in Afghanistan for undermining their war effort.

In taking Washington’s dollars but supporting its opponents, Pakistan certainly played a double-game, one whose effects were especially felt in the mid-2000s, when the Taliban was on the defensive. Pakistani aid and sanctuary ensured that the Taliban would have the space to regroup physically, politically, militarily, and organisationally. 

Washington insiders, while correct in their descriptions of Pakistan’s policies as duplicitous, are prone to exaggerating their implications as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e war. Even if Islamabad had done exactly what Washington wanted, US forces would still have strained to pacify a rural-based insurgency with as few troops as the Bush administration had in Afghanistan. 


For most of Bush’s presidency, the US had 10,000-20,000 troops in Afghanistan. This was a paltry commitment when juxtaposed with the administration’s stated goals. After all, the US had roughly 150,000 troops in Iraq during Bush’s second term and, in more direct comparison, the Soviets had more than 100,000 soldiers occupying Afghanistan in the 1980s. 

Furthermore, this relatively light American presence in Afghanistan was aimed not just at fighting but also building hospitals and schools, digging irrigation canals, directing traffic, and cooking.

What about the lack of a credible, popular, and competent ally on the ground? From the perspective of many officials, the roots of US failure in Afghanistan lie exactly there – within Afghan society. There are two main variants of this argument. 

First, the corruption of Hamid Karzai, the warlordism of his governor allies, and the wider kleptocratic system that Americans found themselves against never gave the occupation a chance. Widespread corruption undoubtedly played an important role in delegitimising the governments the US set up in Kabul – first Karzai’s and then Ghani’s. 

But Washington made its own bed on this score: it chose to centralise power in Kabul despite Afghanistan’s political history being marked by relatively autonomous regions and provinces, and it chose to do so in the person of Hamid Karzai. It also chose to solve problems in Afghanistan by throwing money at it. 


As the New York Times sensationally reported in 2013, American fingerprints could be found all over Karzai’s behaviour. The CIA, invoking B-grade action movies, was delivering duffel bags of cash to Karzai’s office for distribution to his allies. The Obama administration also looked the other way as Karzai ballot-stuffed his way to re-election in 2009.


Second, alongside the major problem of corruption, US officials considered Afghans too uneducated, too undisciplined, and essentially too backward to mould into a fighting force worthy of a sovereign state. According to the Washington Post, interviewed sources “depicted the Afghan security forces as incompetent, unmotivated, poorly trained, corrupt and riddled with deserters and infiltrators”. 

It is true that the Afghan rank and file suffered from illiteracy and observed cultural mores very different from what GI Joes and Janes were accustomed to. Nonetheless, it hardly seems fair to blame Afghan recruits if they could not read aircraft repair manuals or if they confused urinals for drinking fountains, as some American officers have claimed. 

The Afghan forces’ petty corruption or their attacks on coalition troops were admittedly a much bigger problem. But even here, it stretches credulity that smuggled fuel and around 150 casualties can defeat a hegemonic superpower. Rather, there were bigger forces at play.  

American failure

Pakistan may have been an unhelpful ally and Afghanistan may have been an unruly client – pesky foreigners with their own world views, agendas, and customs – but the central causes of American failure in Afghanistan were located in the US. Most importantly, the George W Bush administration, whose neoconservative foreign policy was dictated by the triumvirate of Vice President Dick Cheney, Defence Secretary Donald Rumsfeld and Deputy Secretary of Defence Paul Wolfowitz, made two fateful choices that doomed the US effort. 

First, the decision to invade Afghanistan was more an emotional response aimed at satisfying the collective psychological need for revenge for the 9/11 attacks than a result of careful strategic consideration. As one writer puts it, American decision-making in the aftermath of 9/11 seemed rooted in “a kind of irrational, all-encompassing, post-traumatic breakdown”.  


Understandably, the US leadership felt it needed to engineer a military response to the gruesome attacks of 9/11. But in the autumn of 2001, the Bush administration did not adequately think through the precise aims of military action in Afghanistan. 

Officially, the war that began in October 2001 was aimed at eliminating al-Qaeda as a threat. As a corollary, this meant a government in Kabul that would deny that terrorist organisation sanctuary. Could the Taliban be such a government? The US seemed to believe that because Taliban leader Mullah Omar had not taken a sterner line against al-Qaeda during the late 1990s, that he could not be relied upon to do so post-2001. 

This was a reasonable but tragically flawed line of thinking. It was reasonable because the US had made several overtures to the Taliban before 9/11 to abandon Osama bin Laden and force him out of the country, most likely back to Saudi Arabia, where he would face that regime’s particular form of justice.

On the other hand, it is instructive that the Washington Post series quotes national security leaders like Jeffrey Eggers, diplomatic officials like Zalmay Khalilzad, and academic experts like Barnett Rubin to exactly that effect: the US could indeed have reached a deal with the Taliban had it adopted a more accommodationist course. 

And while it was one thing to avoid talks with the Taliban, the Bush administration went much further, rejecting agreements that the Afghan government itself struck with the Taliban in 2001 and 2004 that conceivably could have ended major combat 15 years ago. 

Simply put, the Bush administration failed to weld negotiations to its military strategy. About five years later, President Barack Obama’s administration would repeat the same mistake of not contemplating negotiations seriously enough. 


Rubin, who worked under Secretary Hillary Clinton at the State Department, argues that the Obama administration’s reluctance to reach out to the Taliban was a product of her impending presidential run, and the attendant need to demonstrate her militaristic bona fides to an electorate suspicious of women’s perceived “softness” on national security.

In addition, Obama’s timeline for withdrawal of US forces, almost universally panned in the documents, was similarly born of domestic political calculations, since he wanted his 2012 re-election campaign to be inoculated against any backlash to his 2009 troop “surge”. 

Aside from these major errors, Obama’s exclusive focus on al-Qaeda was also anachronistic – such a strategy might have worked in 2001, but by the 2010s, the Americans were facing a different war than the one they started with. 


The ‘side war’ 

Just as fateful as the confusion over the mission in Afghanistan, and the degree to which the Taliban was to be designated an enemy with whom negotiation was possible, was the decision to invade Iraq.

In general, the Beltway does not like to talk much about the Iraq war when it comes to its failures in Afghanistan because it was an entirely unforced error that cannot be laid at the feet of conniving Pakistani generals, corrupt Afghan elites, thuggish warlords, Islamist extremists, backstabbing soldiers, or buffoonish police.

The Washington Post’s series only briefly delves into the question of Iraq, but the tranche of documents it released paint a bigger, and uniform, picture: Iraq represented a severe diversion.


In the documents it released, James Dobbins, a diplomat and special representative to Afghanistan and Pakistan during 2013-14, is quoted as saying. “First, you know, sort of just invade one country at a time.” He explains that until roughly 2005, Iraq took attention away from Afghanistan; after that point, it began to take resources too. 

Echoing Dobbins, Douglas Lute, the White House “Czar” for Afghanistan between 2007 and 2013, said that the Bush administration’s “attention would break down to about 85 percent on Iraq and 15 percent on Afghanistan, or maybe even 90 percent attention on Iraq and 10 percent attention on Afghanistan”. 

David Richards, a British general who led NATO in 2006 and 2007, stated plainly: “The US was sending the best minds and resources to Iraq.” Most ominously, at the time that the Taliban was militarily resurgent in the mid-2000s, the Bush administration was pushing NATO to take the lead because “the US had too much on their plates”. 

The idea that the US should have fought one war at a time is well-taken, and the level of self-criticism displayed in these documents is laudable. Nevertheless, the critiques of the Iraq war are striking for not going nearly far enough. 

The basic premise seems to be that the biggest problem with invading Iraq was that it diverted resources for war-fighting. Conspicuous by its absence, at least in these documents, is any sense of the regional and global implications of an aggressive war where the US invaded a country that had nothing to do with 9/11 and that had not threatened it. 

These included the loss in sympathy, soft power, and political capital the world over, in many cases most sharply in NATO countries. In addition, the slogan that the US is at war with Islam – popular with both Islamists and Trumpist Republicans – became much harder to debunk. 


Most significantly, the documents betray no collective reckoning with why the Iraq war was fought. The Bush administration attacked Iraq because it believed that merely attacking Afghanistan would not sufficiently demonstrate the might of its military and the toughness of its resolve to the rest of the world. 

Indeed, rather than the “good war” monicker the Afghanistan conflict has been cloaked with since its inception, it was ironically the “not good enough” war. A bigger bang was needed to show the US meant business. 

Both the invasions of Afghanistan and Iraq stemmed from a shoot-first-ask-questions-later attitude, one especially prevalent among neocons but shared by a significant cross-section of the “respectable” foreign policy establishment. Such a cavalier approach to the use of deadly force permeates American behaviour among citizens, between citizens and the police, as well as between the military and other states, raising questions about US society beyond the ambit of foreign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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