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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곰브리치, 1장 신비에 싸인 기원 - 선사 및 원시 부족들: 고대 아메리카, The Story of Art, EH Gombrich, Strange Beginning

Jobs 9 2024. 1. 2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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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H.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1장 신비에 싸인 기원 - 선사 및 원시 부족들: 고대 아메리카

 

1. 우리가 언어의 시작을 모르는 것처럼 미술에 기원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미술의 범위를 정하는 것에 따라 그 시작도 달라진다. 건물들은 일반적으로 실용성의 기준에서 평가하지만 때로는 실용성과는 별도로 ‘제대로’ 지은, 다시 말해서 디자인이나 비례 등의 부분에도 관심/호감을 나타낸다. 과거에는 회화와 조각에 대한 태도도 이와 비슷했다. 건물을 세운 동기를 모르면 그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듯이 고대 미술품 역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는 그 동기를 알아야 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미술 작품의 제작 목적은 명확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생소해진다. 실용성의 관점에서 원시인들에게는 집을 짓는 것과 상(像)을 만다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오두막이 비바람과 햇볕으로부터, 그리고 정령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있듯이 형상도 그들이 힘처럼 현실적으로 여기는 다른 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주술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2. 이처럼 미술의 기원을 이해하려면 원시인들이 그림을 ‘실용적’ 위력이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좋아하는 운동 선수의 사진을 바늘을 이용하여 눈을 파내는 것을 즐기지 못 한다. 이러한 이상하고 불합리한 생각이 원시시대에도 존재했을 것이다. (예시: 영국의 가이 포크스 데이(Guy Fawkes Day),  아프리카에서 유럽 화가가 소를 그리자 원주민들이 “당신이 소들을 끌고 가버리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갑니까”라고 항의한 사례)

 

3. 이러한 생각들은 우리들이 가장 오래된 그림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도판 19] <들소>,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

< 들소 >

[도판 20] <>, 기원전 15,000-10,000년경. 동굴 벽화, 프랑스 라스코 동굴

< 말 >

19세기에 발견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동굴 벽화가 발견됐을 때 고고학자들은 이 지방에서 돌과 뼈로 만든 도구들이 발견되어 짐승들을 사냥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는 빙하시대의 사람들이 그렸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도판 21]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그려진 동물들, 기원전 15,000-10,000년경.

프랑스 라스코 동굴 천장에 그려진 동물들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곳에 그려진 이런 그림들은 ―가장 그럴듯한 해석을 붙인다면― 그림의 위력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의 가장 오래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들이 창이나 돌도끼로 그림 속의 동물을 공격하면 실제로 동물들이 그들의 힘에 굴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4. 물론 이것은 추측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은 고대의 관습을 아직도 보존하며 우리 시대에 살고 있는 원시인들이 미술을 이용하는 것을 보아도 뒷받침된다. 아직도 원시도구만을 사용하며 주술적인 목적을 위해 바위에 동물들의 그림을 그리는 부족이 있으며 정기적인 축제를 벌이며 동물처럼 보이는 옷을 입으며 춤을 추는 부족도 있다. 이런 의식들이 그들에게 먹이를 압도해서 잡을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관념은 로마 시대에도 발견된다(로마의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젖을 먹인 암늑대 동상을 주피터 신전 앞에 세웠다). 이러한 것은 매우 진지한 토템으로서 그들은 사람도 될 수 있고 또 동시에 동물도 될 수 있다는 그런 꿈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전히 오늘날까지도 그곳에 우리를 만들어 암늑대를 키운다! 대부분의 부족들은 독특한 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의식을 행할 때에는 동물의 모습을 닮은 가면을 쓰고 그렇게 하면 그 동물로 변신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아이들의 (현실과 구별되지 않는)해적놀이나 탐정놀이 등과 유사하지만 (아이들과는 달리)원시인들은 그러한 환상을 망칠 다른 세계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놀이와 같은 의식에 모두가 다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으며 벗어날 기회도 없었고, 비판적으로 볼 기회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접하기 전까지는 그런 것들을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5. 이러한 것들은 모두 미술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이러한 조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미술에 영향을 끼친다. 미술가들의 작품 대부분은 이러한 의례의 일익을 담당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는가이다. 더군다나 미술가들은 각각의 형태와 색깔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그들의 부족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

 

6. 이와 비슷한 예는 국기(國旗)와 예식 반지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생활의 규정된 의식과 관습의 테두리 내에서는 원하는 취향과 솜씨를 선택해서 그것을 구사할 여지는 있다. 예컨대 크리스마스 트리의 주요한 특징들은 관습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각각의 가정마다 나름의 전통과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제삼자가 보기에 이상해 보일지 모르는 트리 장식이 트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우리들 생각대로 장식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

 

7. 원시 미술은 이처럼 미리 정해진 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미술가의 기질을 알아 볼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우리가 원시미술을 논할 때 ‘원시’는 미개함의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술의 수준이 아닌 착상이다. 미술의 모든 역사는 기술적 진보가 아닌 변화하는 생각과 요구에 대한 것이다. 어떤 조건에서는 원시 미술가들이 자연을 표현하는데 유럽의 대가들 만큼이나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증거가 발견된다. 나이지리아의 청동 두상은 수 백년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적 유사성이 뛰어나며 그 표현 기술을 외부세계로부터 습득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도판 22] <마오리 족장의 집에 장식된 상인방>, 19세기 초. 목각, 32*82cm, 런던 인류 박물관

< 마오리 족장의 집에 장식된 상인방 >

[도판 23] <흑인 청동 두상>, 나이지리아의 이페에서 출토, 족장의 상(像)으로 추정, 12-14세기. 청동, 높이 36cm, 런던 인류 박물관

< 흑인 청동 두상 >

 

8. 그렇다면 원시 미술 대부분이 그렇게 생경해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 원주민은 간단한 얼굴 형상을 나무에 그려 넣었을 때 보이는 완전히 다른 형상, 그 얼굴이 주는 인상을 마술의 상징으로 간주한다. 이들은 우수한 조각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정확하게 사람의 모습을 표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어떠한 형상을 묘사할 때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니라 이 형상을 인식하게끔 하는 통일성과 조화이다. <의식용 가면>은 아름답게 보이지 않지만 미적 목적성을 가지고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충분한 지시성을 띠고 있다.

[도판 24] <전쟁의 신 오로>, 타히티에서 출토, 18세기. 나무에 신네트를 씌운 것, 길이 66cm, 런던 인류 박물관

< 전쟁의 신 오로 >, 타히티

[도판 25] <의식용 가면> 뉴기니의 파푸아만에서 출토, 1880년경. 나무와 나무 껍질 및 식물성 섬유, 높이 152.4cm, 런던 인류 박물관

< 의식용 가면 > 뉴기니

9-11. 또 다른 한편으로 원시미술은 장식적인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단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 묘사를 통하여 사물의 전체를 설명한다.  

[도판 26] <하이다(북미 북서 연안 지대의 인디언) 족 추장의 집>, 19세기 모형, 뉴욕 자연사 박물관

< 하이다(북미 북서 연안 지대의 인디언) 족 추장의 집 >

도판26의 각 세부에 등장하는 각각의 도상은 의미를 가지며, 그것이 모여 하나의 전체 이야기를 서술한다.

 

12.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이상한 망상의 소산으로 여길 수 있지만 이러한 것을 만든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 대단히 엄숙한 작업이며, 이 작품(기둥)은 강력한 추장의 집과 그에 관한 존중을 보여준다.

 

13. 이러한 설명 없이는 많은 애정과 노력이 깃든 조각상의 의미를 전혀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연의 형상을 일관성 있는 패턴으로 변형시킨 철저함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대 아메리카의 위대한 문명 중에서 남아 있는 것은 그들의 ‘미술’이다. ‘미술’이라는 단어를 강조한 이유는 이와 같은 것들이 즐거움이나 ‘장식’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조각들의 정확한 의미는 조금 밖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다른 원시 문화의 작품들과 비교해서 볼 수 있다.

 - 16세기 멕시코의 아즈텍과 페루의 잉카의 발전된 문화와 도시체계

 -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인의 인간 얼굴의 사실적 묘사

 - 고대 페루인들의 ‘사람의 머리형상 그릇.

이러한 문명들의 작품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관념 때문에 생소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도판 27] <죽음의 신의 머리>, 마야 족의 돌제단에서 출토, 500-600년경. 온두라스, 코판, 37*104cm, 런던 인류 박물관에 있는 석고 모형

<죽음의 신의 머리>, 마야

[도판 28] 알래스카의 <의식용 가면>, 1880년경. 채색 목판, 37*22.5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민속 미술관

알래스카의 < 의식용 가면 >

[도판 29] <애꾸눈 사나이 머리 모양의 토기>, 페루, 치카나 계곡에서 출토, 250-550년경. 점토, 높이 29cm, 시카고 미술 연구소

< 애꾸눈 사나이 머리 모양의 토기 >, 페루

14.  도판 30은 멕시코가 스페인에게 정복당하기 이전의 마지막 시대인 아즈텍 시기로 추정되는 조각 작품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틀라록(Tlaloc)이라는 비의 신을 표현 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열대 지방에서의 비는 지역 사람들의 생과 사를 결정 짓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무섭고 강력한 수호신의 형상으로 표현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주어진 형태를 가지고 얼굴을 ‘만들어내는’ 그들의 관념이 실물과 같은 조각을 만드는 우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가를 알 수 있다. 만약 이 이상한 우상을 만들어낸 정신 상태로 들어가 볼 수 있다면 초기 문명에서 형상을 만든다는 것이 마술과 종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들 문자의 최초의 형태에도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미술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림과 문자가 가지는 밀접한 혈연적 관계를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도판 30] 아즈텍의 <비의 신 틀라록>, 14-15세기. 돌, 높이 40cm, 베를린 국립 미술관, 민속 미술관

아즈텍의 < 비의 신 틀라록 >

 

 

 

The Story of Art, EH Gombrich, Strange Beginning

 

“We do not know how art began any more than we know how language started” Gombrich shared. Through the remains of ancient paintings, sculptures, artifacts, ruins we can imagine the different strange beginnings our primitive ancestors once lived and created…. “We call those people ‘primitive’ not because they are simpler than we are — their processes of thought are often more complicated than ours- but because they are closer to the state from which all mankind once emerged” Gombrich clarified.

Two of the oldest discovered human paintings includes the picture of a strong, delicious looking bison and a cute chubby horse found in caves of Spain and France ~c. 15,000–10,000BC. I was surprised to learn that “archaeologists refused at first to believe that such vivid and lifelike representation of animals could have been made by men in the Ice Age” — I don’t think they accepted Gombrich’s clarification that primitive people do not mean simpler people. Of course, our ancestors had less technology, tools, and access to today’s encyclopedia of a cumulated world knowledge- but none of that, to me, should hinder their ability in observing the world around them and their capabilities in creating just as beautiful, vivid, and lifelike art as artists do today. I’m not impressed that the paintings are good, I’m impressed they lasted this long!

Bison, c. 15,000–10,000BC Cave painting; Altamira, Spain
Horse, c 15,000–10,000 BC Cave Painting; Lascaux, France
 

Many, many dynasties later… we enter the nineteenth century and are still surprised that “some parts of the world primitive artists have developed elaborate systems to represent various figures and totems of their myths in such ornamental fashion,” Gombrich shared. What is interesting to me is that most older artwork from Western and popular civilizations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Western civilization (e.g. Egypt, Mesopotamia, Asia) are described as mostly just “ancient”, “great”, or some variation of respect that reflects the expected accomplishments of an impressive civilization of the past. In contrast, indigenous artists or artwork from less popular civilizations (e.g. African, native America) are often labeled as primitive and strange with far lower expectations.

For example, in describing a model of a chieftain’s house of the Haida tribe, Gombrich explains that while “we may see only a jumble of ugly masks, but to the native this pole illustrates an old legend of his tribe. The legend itself may strike us as nearly as odd and incoherent as its representation, but we ought no longer to feel surprised that native ideas differ from ours.”

Model of a 19th century Haida chieftain’s house, northwest coast Indians; 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 New York

Here’s the story of the “odd and incoherent” legend as descried by Gombrich:
“ Once there was a young man in the town of Gwais Kun who used to laze about on his bed the whole day till his mother-in-law remarked on it; he felt ashamed, went away and decided to slay a monster which lived in a lake and fed on human and whale. With the help of a fairy bird he made a trap of a tree trunk and dangled two children over it as bait. The monster was caught, the young man dressed in its skin and caught fishes, which he regularly left on his critical mother-in-law’s doorstep. She was so flattered at these unexpected offerings that she thought of herself as a powerful witch. When the young man undeceived her at last, she felt so ashamed that she died.”

Gombrich does ‘praise’ the work by speculating “it is tempting to regard such a work as the product of an odd whim, but to those who made such things this was a solemn undertaking. It took years to cut these huge poles with the primitive tools at the disposal of the natives, and sometimes the whole male population of the village helped in the task. It was to mark and honor the house of a powerful chieftain.”

Imagine seeing strange nineteenth century stories from Western legend such as Hansel and Gretel or even tenth century folk tale like the Little Red Riding Hood as art displayed in Museums too. Imagine those stories became a solemn undertaking that took individual artists and sometimes even whole populations years to recreate into films and other mediums. What if Haida fairy tales are not that different from the fairy tales of the West. What if they are just different creative stories, drawings, carvings, movies… that’s neither too strange that too primitive from what people are still creating today.

 
Inuit dance mask from Alaska, c. 1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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